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오늘속으로] 군대 해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오늘속으로] 군대 해산

입력
2001.08.01 00:00
0 0

1907년 8월1일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됐다.일본은 그 전날인 7월31일 순종으로하여금 군대해산 조칙을 내리게 했다. 군대의 해산은 그 해 7월24일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가 체결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의 부속 밀약에 의한 것 이었다.

군대 해산으로 이제 한국에는 합방의 물줄기를 틀어볼 아무런 수단도 남지 않게 되었다. 1910년의 합방은 그저 예정된 수순에 불과했다.

군대 해산에 저항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군대 해산 명령과 동시에 서울 시위연대(侍衛聯隊) 제1대대장 박승환은 권총으로 자결했고, 그의 순국은 무력 항쟁의 불을 지펴 한국군과 일본군 사이의 서울 시가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군대 해산 명령 직전 서울에는 대규모의 일본군이 이미 증파돼 있었고, 한국군의 무력은 그들을 감당해낼 수 없었다. 서울 군대의 해산에 이어 지방의 진위대(鎭衛隊)도 잇달아 해산됐다.

그 가운데 원주 진위대와 강화 분견대는 해산에 저항해 봉기했지만, 이들 역시 이내 일본군에게 진압됐다.

박승환의 순국은 마땅히 기릴 만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고종의 와전(瓦全)이다. 그는 군대 해산 열하루 전인 1907년7월20일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강제로 퇴위됐다.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보낸 사실을 빌미로 삼은 것이었다. 봉건 국가의 군주였던 고종은 명실공히 한국인 전체를 대표했다.

그러나 그는 치욕의 삶을 살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일본 사무라이들이 자신의 비(妃)를 능욕하고 살해했을 때도, 일본이자신을 제위에서 몰아냈을 때도, 자신의 군대가 해산되고 자신의 나라가 일본에 병합돼 저 자신이 일본 천황의 신하가 됐을 때도 세 끼 밥을 먹으며 삶을 이어갔다.

고종만이 아니라 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갈 때 황족 누구도 제 몸을 버리지 않았다.

고종석편집위원

aromach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