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2군에서 참아라.”지난해 시즌 초반 호시노 센이치 주니치 드래곤스 감독은 이종범(31ㆍ기아 타이거즈)을 조용히 따로 불렀다. 그 말은 송곳보다 날카로우면서도 서럽게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말없이 짐을 싸서 2군으로 옮겼다. 존경하던 선배 선동열(KBO홍보위원)의 은퇴식도 지켜볼 수 없었다.이종범은 배트를 쥔 후 처음으로 굵은 눈물을 쏟았다. 좌절감 때문이지만 분노도 섞여 있었다.
1년 뒤 코칭스태프는 다시 “1년 더 참아라”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를 했다. 한국에서 ‘야구천재’ 의 별명을 달고 살았던 이종범은 구겨진 자존심 때문에 갈팡질팡했다. 이때부터 부모님이 전화를 해 “한국에서 같이 살자”고 권유했다. 일본서 태어난 아들 정후, 딸 가연이도 마음에 걸렸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이제부터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배트나 글러브가 아닌 가족이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6월20일 귀국했고, 한달 뒤 기아와 연봉협상(3억5,000만원)을 매듭지었다.
해태 1, 2군과 함께 광주구장에서 3주째 몸을 만들고 있는 이종범을 지난달 29일 만났다. 귀국 당시 “몸상태가 50% 밖에 되지 않아 당장 복귀하면 부상 위험이 따른다”고 걱정했던 그는“이제 70%로 컨디션을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그는 컴백전인 1일 맞서게 될 SK투수에 대한 분석작업도 거의 끝낸 상황이었다. “연습이 끝나면 집에서 TV로 중계방송을 보면서 나름대로 연구를 하는데 실전만한 게 있겠느냐”며 웃어보였다. 이건열 타격코치가 타격폼이 전성기에 비해 많이 망가졌다고 걱정하더라고 전하니까 “맞는말이다”고 동의했다.
팔꿈치 부상 탓도 있지만 일본 코칭스태프는 조금만 타격감이 좋지 않으면 뜯어고친다고 불평했다. 예전처럼 강한 손목힘을 이용해 타구시 힘을 싣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입버릇처럼 “일본에서 마음고생이 너무 심했다”고 해 어느 정도였는지 궁금했다. 이종범은 “실력이 없는 건 내 탓이지만 정말 의사소통도 안됐고, 표나지 않게 불이익을 너무 많이 받았다.
올초 2군에 갔을 때는 주니치의 푸른색유니폼이 저주스러웠다”며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야구를처음 배웠을 때보다 힘들었냐고 되묻자 이종범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그때는 꼭 성공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
가족의 장래가 내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표가 없는 생활이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는지 이해하겠느냐”고 되물었다. 2남2녀의 막내였던 이종범은 초등학교 선배였던 김기태(삼성)가 입은 유니폼이 멋져보여 야구를 시작했다.
‘이종범효과’로 화제를 돌렸다. 대 스타답게 팬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현해탄을 건너갈 수 있었던 것도, 다시 돌아온 것도 팬들 성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면서 “구체적인 목표를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실망시켜드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광주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지난 2년 동안 야구장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종범도 돌아오니까 다시 찾을 때가 된 것 같다. 20승 투수 만큼 팀 성적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다시 야구장을 찾고 싶게 만들 수는 있을 것 같다.” 팬치고는 너무 예리한 시각이었다.
새 유니폼에 대해 물었다. 이종범은 “붉은색의 해태유니폼은 촌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해태가 명문팀이 되는 바람에 멋진 유니폼이 되지 않았냐”고 반문했다. 그 말 속에는 분홍색, 회색의 기아유니폼도 그렇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등번호 7번. 이종범은 그 숫자가 행운을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이후 그 믿음이 한국 땅에서 그를 배반한 적은 없었다. 그가 아끼는 미즈노배트는 860g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크다. 야구팬들은 야구천재 대신 또 다른 별명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 이건열코치가 본 성공조건
‘복고풍.’ 이종범이 다시 천재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이건열 기아 타격코치는 이종범의 타격폼이 일본에서 많이 망가졌다고 보고 있다.
배팅 케이지에서 바깥쪽 볼은 힘없이 툭 갖다 대고, 몸쪽만 파워 배팅을 하는 게 불만이다. 주니치 드래곤스서 6개월 동안 연수를 한 이 코치는일본 지도자들이 타자들에게 손을 많이 댄다고 불만 섞인 말을 했다. 세
밀한 일본야구는 몰라도 한국야구에서는 이종범의 타격스타일이 어울리지 않는다고보고 있다. 김성한 감독도 이종범이 교타자가 되기보다는 밀어쳐도 홈런을 만들어냈던 전성기 시절 호쾌한 타법을 기대하고 있다.
광주구장에서 연습한 최근 3주 동안 코칭스태프는 전성기 때 타격을 이종범에게 계속 상기시켜줬다. 강한 손목 힘을 이용해 타구에 힘을 최대한 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코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종범이 성공하기 위한 요건 3가지도 빠뜨리지 않았다.
천재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상대투수들의집중견제를 어떻게 헤쳐나가느냐, 또 경기감각을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가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타격이 부진하면 해태가 동반하락할 가능성에대해서는 “빠른 발은 여전하더라. 일단 출루하면 상대팀을 흔들어 놓는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충분히 해낼것”이라고 장담했다.
■ 이종범 약력
1970년8월15일 광주에서 출생. 광주 서림초, 충장중, 광주일고, 건국대 졸업.93년 해태입단.
한국시리즈 MVP(93, 97년) 골든글러브(93, 94, 96, 97년) 정규리그 MVP(94년) 타격4관왕(94년) 세계최초30(홈런)-60(도루)달성.
국내통산 타율 3할3푼2리, 홈런 106, 타점315, 도루310 등. 97년 12월 주니치 진출. 통산타율 2할6푼2리,홈런 27, 타점 99, 도루 53. 2001년 6월15일 국내복귀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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