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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서울에 그림거리 있다면

입력
2001.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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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베이징(北京)의 거리 모습에서 중국의 저력을 실감한 적이 있다. 고색창연한 원 명 청의 오랜 수도가 현대도시로 탈바꿈하는 속도는 놀라웠다.베이징 도심을 에워싼 중심거리에 속속들어선 고층건물은 겉모습이 휘황찬란하다. 후퉁(胡同)이라 부르는 뒷골목도 한창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엄청난 자부심이 담긴 중국정부의 1,600억 달러 예산이 투입되면 베이징은 환경문제를 해결한 현대도시로 일신하게 된다.

앞으로 세계인은 자금성 천단 이화원 만리장성등 명승고적뿐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건축을 보기 위해 베이징을 찾게 될 것이다.

서울의 거리는 아름다운 곳을 찾기어렵다. 오백년 전통도시의 흔적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규모가 작은 인사동은 무언가 어색하고 남산 한옥마을은 전시용에 불과하다.

광화문을 비롯 종로마포 등지에 우뚝 솟은 건물은 많아도 자랑거리는 되지 못하고, 사방에 들어선 신도시는 아파트만 즐비할 뿐 한국을 대표할 경관은 찾기 어렵다.

서울은 이제 새로운 도시 모습을 창작해 나가야한다. 무엇을 창작할 수 있을까? 중곡동 가구거리나 강남 로데오거리의 대형 그림에서 그 실마리를 연상할 수 있다.

특히 중곡동 가구거리는 변신의 소재로 적합하다. 군자교를 건너 어린이대공원 후문에 이르는 1.4Km 길은 서울에서 보기 힘든 왕복 8차선이다. 버스들은 중앙에 설치한 전용차선을 시원하게 달리고, 땅 아래 전철은 수많은 승객을 태우고 질주한다.

이 거리의 70여 가구점과 10개의 금융사 중 대한투자신탁증권 중곡점과 가구점‘ 심서방’엔 커다란 그림이 걸렸다.

고객들이 환히 웃는 얼굴과 가구가 있는 방 그림이다. 이 그림은 상호 간판의 틈바구니에 핀꽃처럼 거리를 아름답게 만든다. 천호대로 큰 거리에 이런 그림을 붙여나가면 어떨까?

그림이 있는 거리는 여러 방식으로펼칠 수 있겠다. ‘규수방’‘ 행복찾기’ 같은 예쁜 이름을 가진 가구점들이 한국화와 서양화로 아늑한 가정과 방을 그린다면 은행과 증권사들은 산들 숲 계곡 등 풍경화를 그려나가면 좋을 것이다.

주유소들이 초현실 그림으로 잔잔한 파문을 던진다면 여야 지구당 사무실은 미래의 한국사회를 전망하는 그림이 좋겠다.

만화전문점 ‘우주문고’는 만화필치로 세상을 펼쳐가고, 첨단디자인 그림이 용솟음치는 회사건물을 지나 어린이 공원 주변엔 꿈같은 동화의 나라를 채색한다.

또 타일로 영구그림을 붙이는 구역과 사진 프린트로 표현하는 구역, 그리고 화상석을 붙이거나 벽화 구역을 정할 수 있겠다.

밤에는 조명을 통해 갖가지 색채가 휘황찬란한 속에 레이저 광선을 쏘아 움직이는 영상들 간의 대화를 듣는다면 신비한 거리로 변모할 것이다.

어린이대공원 정문에 세종대왕과 장영실, 호랑이를 탄 신선과 선녀, 박찬호와 박세리 모형이 나와 시간을 알릴 때 터져나올 환성은 명물의 탄생소리가 아닐 수 없겠다.

그림이 크면 창문에서 띄워 달고, 상호는 그림 옆에 적당한 크기로 나란히붙이면 불편하지 않을 터이다.

그림이 있는 아름다운 거리는 세계적인 명물이 되어 사람들로 붐빌 것이니 건물주와 상인들은 불만이 없을 것이고, 주민들은 명소 옆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할 것이다.

꿈같은 이야기이다. 결코 실천이 쉬운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은 답답하다. 무언가 탈출구가 있어야 한다.

광진구는 월드컵 경기를 대비한 환경 개선사업 중 불법광고물 정비실적이 서울자치구에서 1위이다.

아름다운 거리만들기는 단속보다 적극적인 도시경관의 창조가 좋은 방식이다. 가구거리가 그림이 있는 거리가 되면 동대문구 자동차 거리까지의 연장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호주 시드니시의 흑자재정의 원천인 오페라 하우스도 꿈에서 시작했다. 그처럼 실현이 어려운 일에는 만화같은 꿈이 필요하다. 그런 꿈이 종종 거대한 나무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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