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여행의 계절이다. 이 맘 때가되면 항상 또렷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바로 1981년의 무전여행과1994년의 시베리아 여행이다.이들 여행은 내가 민속학자로서 ‘외길 인생'에 대한 결정을 내린 계기는 물론 학자로서 폭 넓은 사고를 하게 된전환점이 되었다.
1981년의 그 회색 빛 여름 공간에서나는 전국을 떠돌고 있었다. 통도사 수행에 참가하여 죽비(竹篦)를 맞으며 일주일 여를버텼고, 밀양 백중놀이로부터 함안의 가야유적지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만행(蠻行)’에 가까운 여행을 시작했다.
또지리산 청학동에서 당시 생존해 계시던 강산제의 대가 정권진 옹이 대학생들을 위해서 열었던 판소리강습회, 광주 계림초등학교에서 열렸던 기독교 장로회주최의 '죽은 자 가운데 일어서라'는 집회에 이르기까지 그 해 전국에서 일어났던 많은 '문화적 사건'에 동참했다.
요즘 대학생들의 배낭여행처럼 당시에는 일종의 무전여행 같은 것이었는데 그럭저럭버틸 만 했다고 기억된다.
무려 80여일 간 홀로 떠나는 여행을 통하여 이땅의 풍토와 사람, 그리고 문화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소중하고 결정적인 ‘만남’들을 일궈냈다.
그보다 한참 뒤인 1994년에는 민속학자인지라이미 전국을 떠도는 것이 직업적인 수단이 되어있던 처지였지만 시베리아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문화적 다원주의에 대해 열린 사고를 얻게 해주었다.
시베리아 레나강가의 야쿠츠크공화국(옛 사하공화국)으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당시만 해도 모스크바를 거쳐서 3일씩 걸려 돌아가야만 했다.
귀로만듣던 에벤키, 축치, 에반스, 사하, 나나이족…등. 다양한 ‘제4세계’의 종족이 살고 있는 시베리아 땅이었다. 동북아시아문화를 한ㆍ중ㆍ일 삼각관계로만인식하던 시각을 저 멀리 시베리아 소수민족까지 연장시켜준 결정적 계기였다.
곳곳에서 만난 친절한 원주민들의 환대와 인간다움은 경쟁에만 몰두해온우리 삶의 척박함을 일깨워줬다.
청춘시절에 떠났던 방랑의 길과 성숙해서만났던 제4세계 사람들과의 만남은 두고두고 나의 지식과 경험의 밑거름이 되고있다.
'자식을 낳으면 홀로 여행을 떠나게 하라'는 얘기를 들먹거릴것도 없이 여행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올해 여름도 물론 어김없이 여행을떠날 것이다. 하지만 안타까운 일은 예전 같은 장기간의 ‘만행’을 저지를 만한 시간과 패기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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