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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새 소설집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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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 새 소설집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

입력
2001.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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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는 별달리 예뻐 보이지 않는 푸른 식물이다. 뾰족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잎사귀를 가진 이 식물은 손으로 힘껏 움켜쥘 때에야 비로소 강렬한 향기를 뿜는다.로즈마리를 심은 화분이 가득한 도심 한 곳에서 소설가 정영문(36)씨를 만났다. 신작 소설집 ‘더없이 어렴풋한 일요일’(문학동네발행) 출간에 즈음해서다.

누군가는 정씨가 “언어를 쥐어짜서 글을 만든다”고 했다. 그 쥐어짠 듯한 언어로 엮어진 정씨 소설의 향기는 낯설고 독하다.

소설집‘검은 이야기 사슬’ 등으로 최근 우리 문학에 이 낯설고 독한 언어의 세계를 선보여온 정씨.

그의 새 작품집도 마치 독자의 끈기를 시험하는 듯한, 쉬 읽어나가기 어려운 언어의 집합체 같다.

작가는 친절하게도 두번째 단편인 ‘무게없는 부피’를 읽으면 소설집 전체를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권했다. 사실은 소설집의 제목을 ‘무게 없는 부피’로 하고 싶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무게 없는 부피’는 하반신이 마비된 남자의 독백이다. 이 소설이 정씨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곳곳에 독법(讀法)의 안내문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가령남자는 “나는 왜 항상 이렇게 혼자 있을때에도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는 대신 소리를 내어 말하는 걸까”라고 중얼거린다.

남자는 혼잣말하는 까닭을 “나의 마음의 진실이 하는 말을 곧이 듣지 않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남자의 말을 조금 비틀어 정씨의 목소리로 옮기면, “생각을 머릿속으로 하는 대신 글자로 쓰는 걸까” 정도가될 것 같다.

남자의 말처럼 정씨의 소설은 머리를 동원해 이해하려는 것보다 소리를 내어 읽는 게 오히려 쉽다. 정씨는 또 진실의 눈부신 빛을 똑바로 볼 수 없어 ‘중얼거리는’ 소설을 쓴다고 암시한다.

문학평론가 김형중씨는 정씨 소설의 주인공을 ‘좀비(살아있는 시체)’라고 불렀다.

살아 있지만 일체의 감각을 상실해 죽은 것과 다름없는 소설 속 화자는 죽음을 향한 강렬한 충동을 끝없이 고백한다.

죽음을 열망하는 이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중얼거림으로써 죽음을 인식하는 동시에 삶을 견뎌나간다.

중얼거림은 그러니까 삶과 죽음이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형식이다. 실제로 정씨의 소설은 시종일관 의미없는 말의 연속, 중얼거림으로 이뤄진다.

정씨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했다. 밤새 깨어 있다가 이미지가 떠오르면, 그 이미지를 언어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왜 소설을 쓰냐고 질문했다. “게으름을 정당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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