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고요함이 모여든다. 에메랄드 청록빛의 맑은 물 속을 한가로이 노니는 열대어와 부드러운 모래 해변의 야자수. 그늘에누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조금은 지겹다? 그러면 바다로 뛰어들자. 카약을 저어 앞 바다 작은 무인도로 떠난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우리만의 섬에서 즐기는 물놀이에 지칠 때쯤 저 멀리서 노을이 진다.
별이 쏟아지는 열대의 밤이 왔지만 두려움은 없다. 자유로운 해방감과 로맨스만이 함께 할 뿐이다.
필리핀 남서부 팔라완 제도의 북쪽 끝에 자리한 엘 니도(El Nido). 앞 바다 바쿠잇 만과 남중국해 사이에는 2억5,000만 년 된 석회암 절벽과 하얀 모래사장으로 이뤄진 45개의 섬들이 있다.
절벽 틈새 곳곳 바닷새의 둥지가 눈에 띈다. 스페인어로 ‘니도’는 둥지 혹은 보금자리. 여기서 이름이 유래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남서쪽으로 430㎞. 마닐라 공항에서 올라탄 19인승 경비행기의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기류에 따른 흔들림이 조금은 두려움을 낳는다.
하지만 1시간 30분을 날아 도착한 엘 니도 상공에서 바라본 열대바다의 형용할 수 없는 연초록 물빛과 점점이 박힌 작은 섬들이 현대 문명에 찌든 인간을 깨어나게 한다.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찬탄이다.
공항에서 리조트로 가기 위해서는 필리핀 전통 선박 방카에 옮겨 타야 한다. 배가 출발하면 곧바로 다도해 한 가운데 들어선 느낌. 파도가 너무 잔잔하다.
팔라완 본섬에서 1시간 여 바다를 가르고 달려가면 엘 니도의 대표적 휴양지 미니록과 라겐이 나타난다.
섬 사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바다는 호수와 같다. 필리핀 말로 호수를 뜻하는 ‘라군’도 섬 깊은 안쪽 여러 곳에 숨어 있다. 수억 만 년 된 고요함이 진초록 물 속에 잠겨있다.
■ 미니록(Miniloc)
작고 아담한 해변가에 갈대를 엮어 만든 전통 필리핀 수상가옥이 눈길을 끈다. TV도 없고, 전화도 없다. 밤이 되면 방의 불빛마저 아주 희미해진다.
온전한 자연 속에서, 속세의 때를 씻어내는 시간. 신혼부부라면 수많은 이야기로 밤을 지새며 인생의 계획을 세워볼 수 있는 분위기다.
해변 바로 옆 맑은 물 속으로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스노클링을 시도해보지만 너무 많은 고기들이 툭툭 다리 사이를 치고다니는 바람에 쉽사리 물 속으로 들어서질 못한다.
카약을 빌려 타고 해변 왼쪽으로 돌아가면 빅 라군이 나타난다. 파도가 거의 없는 호수가 바다쪽으로 작은 입구만을 내놓고 있다. 원시의 고요함 속에서 새들의 지저귐만이 적막을 깨트린다.
미니록 주변에는 가볼 만한 섬이 많다. 양편 섬 사이로 썰물 때면 드러나는 해변이 뱀을 닮은 스네이크 아일랜드와 2차 대전 당시의 인골(人骨)이 있는 동굴로 가득한 무인도 등.
저녁이 되면 방카를 타고 1시간 여 먼 바다로 나가 수평선 너머로해 지는 풍경을 바라 볼 수 있는 선셋 크루즈도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기회다.
■ 라겐(Lagen)
미니록 맞은 편에 있는 라겐은 조금은 도회적인 리조트. 건물도 미니록보다는 깨끗하고 시설도 나은 편이다.
섬 모양이 전체적으로 움푹 파인 듯한 벽난로를 닮아 원주민 언어로 벽난로를 뜻하는 ‘라겐’이 됐다.
배를 타고 사람이 살지 않는 섬, 엔따룰라로 떠나보자. 해변에서 20㎙를 걸어 바닷속으로 들어가도 허리까지 밖에 물이 차지않는다.
물 속을 들여다보면 열대 산호초 사이로 빨갛고, 노랗고, 투명한 열대어들이 떼를 지어 몰려든다. 물놀이에 지칠 때쯤 라겐 리조트에서 식탁과 의자, 음식을 날라와 해변에 점심식사를 차려준다. 둘 만이 즐기는 해변에서의 식사.
주변 섬 전체를 조망하고 싶다면 팡갈루시아를 찾아야 한다. 원주민 언어로 ‘땀의 섬’을 의미하는 팡갈루시아.
해안에서 40분 정도 산 정상까지 하이킹을 하면 몸 전체에서 땀이 비오듯 흐른다. 엘 니도 인근의 섬들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에 올라서 보자.
고생한 보람이 있다. 상쾌한 바람. 점점이 뿌려진 섬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이 색다르다.
저녁 무렵 라겐 리조트 인근에서 낚시를 즐기다 보면 솔져피쉬, 림브 등 예쁜 빛깔의 열대어를 낚는 손맛이 기막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바다. 너무 부드러워 손가락 사이를 스르르 빠져나가는 모래. 그리고 고요한 적막.
바쁜 일상에 지쳐숨 한 번 제대로 쉬기 힘들었던 도시생활이 모두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문명에 찌든 현대인의 피로가 깨끗이 사라지는 곳. 환상의 열대 섬, 엘 니도의 기쁨이다.
■ 즐길거리
엘 니도는 조용한 환경 속에 다양한 해양 스포츠의 역동성이 가미된 휴양지다. 스노클링, 스킨스쿠버 다이빙, 하비캣(hobicatㆍ일종의윈드서핑), 카약 등 다양한 해양 스포츠가 기다리고 있다.
다이버 마스터가 동행하는 스쿠버 다이빙은 열대 산호밭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 한 덩어리의 빵을 손에 쥐고 있으면 열대어들이손을 톡톡 치는 색다른 재미도 맛볼 수 있다.
스노클링은 오리발, 물안경, 스노클 등의 장비를 무료로 대여해 가까운 해안 산호 정원을 구경하는것이다.
미니록 선착장 앞 물 속은 ‘물 반 고기 반’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 잊지 못할 물 속 여행이 된다.
바람이 조금 있는 날은 윈드 서핑이나 돛이 두 개 달린 하비캣을 타고 바다로 나가자. 조금 겁이 나면 물 자전거나 카약을 타는재미도 그만이다. 35달러의 추가비용을 내면 워터스키도 즐길 수 있다.
신혼부부라면 무인도 해변 방문을 잊지 말자. 아담과 이브가 된 느낌이다. 아무런 간섭이 없는 곳에서 신혼의 달콤함에 젖어 보자. 하루 전에 점심 피크닉 예약을 해야 한다.
미니록과 라겐 리조트에는 이밖에도 포켓볼 당구 풀, 배드민턴 장, 탁구대 등 육상 스포츠 시설도 갖춰져 있다. 식사도 다국적 뷔페식이라한국인의 입맛에 맞다.
■ 가는 길
필리핀 전문여행사인 락소(02-569-0999)에서 4박 5일 일정의 엘 니도 여행 상품을 마련했다.
라겐 150만 원, 미니록130만 원 정도면 필리핀 마닐라 시내나 팍상한 관광을 포함해 대부분의 해양스포츠까지 무료로 해결된다. 여행 출발 3주일 전에는 예약을 해야 한다.
필리핀 항공(02-774-3581)이 매일 저녁 한 차례 마닐라 노선에 취항하고 있고, 부산~마닐라 노선도 수, 목, 토, 일요일두 차례씩 운항한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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