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는 의·약 분업을 둘러싼 정부와 이해 당사자의 갈등이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더니, 올 들어서는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시시비비로 온 사회가 시끌시끌하다. 그 사이에 국가경제는 내리막을 걷고, 서민들의 삶은 궁핍의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또 최근에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발표한 정부의 개혁정책에 대한 비판성명에 대해 지지발언과 이의제기로 난리다.
한 사회에서 비판과 반비판이 있다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민주국가에서는누구에게나 자기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보장돼 있다.
또국정현안이나 정부의 중요한 정책 입안 및 시행에 대해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들이 토론을 벌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이런 사회야말로건강한 민주사회다.
문제는상대편을 적으로 삼아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타도하려는 데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토론하고 협력하는 맞수의 정신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또 보수와 진보라는 극한적 대결의식과 편가르기 풍조가 만연해 있다. 온건한 보수와 중도는 기회주의로 간주된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과 행태는 권위주의적인것이고 편협한 것이어서 건전한 시민 정신의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악을 끼칠 뿐이다.
우리 사회는 오랜 동안의 권위주의적 군사정권기를 거쳐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로 불리는 민주주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권위주의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다. 권위주의 사회에는 불신과 갈등이 상존한다.
때문에 파괴적인적대감, 냉소주의가 만연하고, 많은 사람들이 타협과 협상을 통한 갈등의 해결은 오직 교과서적인해법이라고 치부하게 된다. 우려되는것은 국론의 분열과 사회통합의 저해이다.
그런데 갈등이 존재한다고 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냉소적이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사회발전을위해 그것을 조절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구현함으로써 가능하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신장시키는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이다.
다원주의적 민주주의에서는 시민들이 국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합리적 토론에 의해 합의를 도출해 낸다. 그리고 정의감,투명성,인간 존엄성, 공동선, 타협 특히 관용을 중시한다.
타협은 반대 견해나 차별성을 동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적인 것을 인정하고 내버려두면서도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정당세력과 이익세력을 가진 현대 다원사회의 민주주의에서는모든 국가, 경제, 사회정책,대외정책, 국제적 결정들이 타협에 의해 해결되기 마련이다.
관용은 개인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 사회,국제적인 차원에서 발생하는 모든종류의 갈등과 분쟁을 합리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한 이념 혹은 덕목이며, 전략적 가치이기도 하다.
관용은 특히 우리사회의 여러 삶의 영역들,예를 들면, 정치, 경제,사상, 예술, 노동운동,그리고 가정에서 요청되고 실현되어야할 중요한 덕목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생명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정의와 관용 위에 모든 삶의 질서가 확립되어야한다.
거듭 강조하건데 관용의 정신만이 현대 한국사회의 갈등을 봉합하고 민주주의 본연의 가치를 꽃피울 수 있다. 이런 바탕 위에서만 인간 존엄성과 사회 공동선이 실현될수 있다.
박종대 교수 서강대 교육대학원장ㆍ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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