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상징이자 고질로 통하던 어음이 사라지고 있다.정부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특별법까지 검토하며 ‘퇴출’을 시도했던 어음이 ‘카드’를 비롯한 현금성 결제수단에 급속히 밀려나고 있다.
모기업 부실- 하청업체 자금난- 연쇄도산의 연결고리(어음)가 사라진다는 것은 전 근대적인 금융관행의 개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 경제의 시스템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올 상반기 기업들의 현금성 결제, 즉 기업구매 전용카드제와 기업구매자금대출제도 이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밝혔다.
기업구매전용카드제는 구매(원청)기업이 납품(하청)업체에 납품대금을 전용카드로 결제하고, 은행이나 카드사가 거래 내역을 넘겨받아 납품기업에 수수료만 공제하고 대금을 즉각 지급하는 시스템.
영세업체로서는 납품대금을 즉시 현금화할수 있어 좋은 것은 물론, 1~2개월 결제가 늦춰지더라도 금융기관이 보증한 것인 만큼 ‘언제 부도가 날까’ 노심초사하던 어음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공정위에 따르면 1999년 11월 도입된 기업구매전용카드의 신규결제 실적은 지난달 말까지 20개월간 총 15조9,569억원. 이 가운데 올해 상반기 실적만 13조5,760억원(85.1%)을 차지했다.
또 이 카드를 결제수단으로채택한 기업은 1,061개, 혜택을 본 납품(하청) 업체수는 8만1,514개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3~6개월짜리가 예사이던 어음과는 달리 결제기간도‘30일이내’가 53.5%, ‘60일이내’는 82.8%에 달했으며, 대기업(89.6%) 뿐 아니라 중소기업도 10.4%나 이 카드결제를 받아들이고 있다.
납품업체가 물품을 납품한 뒤 구매업체를 상대로 환어음을 발행, 거래은행으로부터 대금을 지급받는 ‘기업구매자금 대출제도’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지난 해 5월 도입된 이래 지난 달 말까지 13개월간 신규결제(15조2,239억원) 가운데 67.4%(10조2,572억원)가올 상반기 중에 이뤄졌다. 두 제도를 통틀어 무려 18만 여개 업체가 ‘어음 부도’ 등의 공포로 부터 해방된 셈이다.
이들 제도가 급속 확산되는 데는 정부가 해당 기업에 대해 법인세(소득세)를 감면하고,하도급법 위반 과징금을 경감해주는 등의 ‘당근’에 힘입은 바 크다.
그리고 전자상거래 활성화에 따른 대금 전자결제 확산도 상당히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신용불안이 증폭되고 상거래 전반이 위축됨에 따른 일시적인 ‘어음기피’일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구매전용카드를 통한 ‘현금성 결제’방식은 복잡한 거래절차와 유통과정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국세청이 이 달부터 시행중인 주류구매 전용카드제 역시 투명한 세원파악으로 왜곡된 주류 유통질서를 바로 잡아보자는 것이 제도 도입의 기본 취지다.
실제로 이 같은 효과를 노리고주류뿐 아니라 담배나 의약품 등 각 분야로 구매전용 카드제의 도입이 확산되는 추세다.
담배인삼공사가 최근 16만 판매업소를 대상으로 담배 구입시 카드로 결제토록 하는 담배구매 전용카드제를 도입한 상태고, 일부 제약업체의 경우 약품 할증이나 덤핑 등의 비리 소지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약품전용 카드제의 도입을 추진중이다.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구매전용카드는 카드발급 가맹점(물품 공급업체)과 회원(대리점, 거래처), 금융기관(카드발급소) 등을 서로 연계한거래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기업구매 전용카드제와 운영방식이 유사하다.
주류구매 전용카드의 경우 주류회사와 종합주류 도매상이 카드 가맹점이 되고, 음식점·술집·소매점등은 카드 이용자(회원), 금융기관은 가맹점(주류회사ㆍ도매상)으로부터 일정의 수수료를 받고 카드발급을 대행해주는 역할을 한다.
전국 55만여 곳의음식점과 술집들은 이제 주류구매 전용카드를 통해서만 영업용 주류를 살 수 있다. 이 방식이 제대로 정착되면 주류도매상과 유흥주점(룸살롱) 등이 과세 자료없이 술을 팔고 사는 관행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게 세무당국의 입장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외상과 어음결제 등이 몸에 밴 주류관련 업체들의 오랜 거래관행 때문에 제도가 완전히 뿌리 내리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면서도 “업체간 현금 결제율을 높이고 거래관계를 투명하게 함으로써 주류업계의 재정을 건전하게 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하는 만큼 머지않아 완전히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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