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5일 전국에는 곳곳에서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1월 서울에는 하루 걸러 하루 꼴(눈 온 날 총 14일)로 눈이 왔다. 7월15일과 23일 중부 집중호우 때는 6월까지 총강수량을 넘는 300여㎜가 하루만에 퍼부은 곳이 속출했다.
반면 봄가뭄은 유례없이 극심했다. 100일 이상 비다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는 등 전국 74개 관측지점 중 22곳에서 사상 최악의 강수량을 기록했다. 또 황사는 종전 최고기록(13회)의 배가 넘는 24차례나 발생했다.
최근 들어 ‘건기, 우기’로 극단화한 한반도의 기상현황이다. 이처럼 기온 및 해수온 상승과 맞물려 우리나라가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고 있다는 관측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 잇따른 아열대화 경고음
지난 100년간, 특히 최근 30년간 한반도의 기온 상승과 강수량 증가는 전 세계적인 온난화 흐름 속에서도 두드러진다.
한국교원대 정용승(鄭用昇ㆍ한중대기과학연구소장) 교수는 “30년간 주요 지점의 평균기온은 0.96도, 강수량은 연 200㎜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특히 최근들어서는 평균이 영상 10도를 넘는 달이 연간 7~8개월에 달해 기상이 아열대(9개월 이상)로 접어들고 있다는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열대화 조짐은 바다에서도 뚜렷하다. 지난해 국립수산진흥원의 포항 근해 해수온 조사에서는 지난 100년간 겨울철 평균 해수면 수온이 3.4도 높아져 연교차가 3.7도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심 500m에서 0.216도, 수심 1,000㎙에서도 0.124도가 올라갔다는 연구결과(서울대 김 구ㆍ金 坵 교수)도 나왔다.
부산 부경대 강용균(姜容均ㆍ해양학과) 교수는 “겨울 해수온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계절에 따른 온도차(연교차)가 거의 없는 적도지방의 해수와 비슷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 생태계는 이미 혼란
생태계의 변화도 심상치 않다. 한대성 동식물들은 우리 주위에서 점차 사라지고 아열대 식물들이 판을 치고 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전성우(全性禹) 박사는 “지금 같은 추세라면 아(亞)한대 식물인 신갈나무군락은 현재의 군락지에서 100~150㎞ 이상 북으로 물러나 태백산 고지대 일부에만 살아남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동백나무 군락이 지리산을 넘는 등 아열대 식물의 북방한계선은 중부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도별 식물분포가 뚜렷한 한라산에서도 한라 돌창포 한라부추 돌매화나무 등 1,000m이상에 사는 한대성 식물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
아열대화에 따라 백두대간 고산대나 남해안 섬의 산 정상에 분포하는 한대성 식물도 피란처를 찾지 못한 채 멸종할 가능성이 높은 절망적 상황이다.
■ 한대성 나비 자취 감춰
꼬리명주나비 봄어리표범나비 붉은점모시나비 상제나비 등 10여종 이상의 한대성 나비들이 기온상승으로 자취를 감추고, 대신 백로 해오라기 등 철새가 텃새화하거나 모기 등 해충이 번성하는 이상현상(한국교원대 김수일ㆍ金守日 교수)이 벌어지는 것도 아열대화 현상 때문이다.
제주도와 남해안에서만 서식해 온 자리돔 돌돔 농성어 파랑돔 세줄얼개비늘 등을 울릉도 인근에서 발견하는 것도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조광우(趙光宇ㆍ40) 박사는 ▦ 명태 대구 등 한류성 어류 급감 ▦ 동해 해수면 상승 ▦ 바닷 속 저층수 수계 혼란 등이 한반도 연안의 아열대화의 징후로 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기상이변 시나리오
“앞으로 100년간 5.8도가 상승하며, 이로 인해 2030년에는 해수면이 10㎝ 높아질 것이다.”(유엔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범정부 패널(IPPC)’)
기상전문가들이 내놓는 한반도의 기상전망은 매우 충격적이다. 환경정책 평가연구원 조광우 박사는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바닷물이 지하수로 유입돼 2030년에는 갖가지 이상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 결과로 동해안 일대논밭에는 새하얀 소금기가 가득해지고, 남ㆍ서해안은 바람막이 역할을 하던 해변가 소나무가 바닷물에 쓸려 없어져 태풍 때마다 극심한 돌풍과 해일 피해가 일어나는 상황도 예견할 수 있다.
농업과학기술원 윤성호 박사는 “온도 상승으로 강원 충북 일대의 고랭지 농업이 점점 사라질 것”이라며 “따뜻한 겨울기온 탓에 애멸구 끝동 매미충 벼멸구 등 해충의 주 발생지가 중부 이북으로 북상할 것으로 전망된다”고말했다.
또 말라리아가 풍토병으로 자리잡고, 담수의 용존 산소량이 떨어지면서 각종 세균성 이질이 번창할 것이라는 서울대 의대 채종일 교수의 전망은 더욱 섬뜩하다.
꽃들의 개화시기가 뒤바뀌고, 생체리듬이 깨진 벌들이 이상 증식, 도심 벌떼 출현이 다반사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부경대 해양학과 허성회 교수는 “아열대화의 부작용은 예상외로 심각하지만 국내 연구는 걸음마단계”라며 “국가 차원의 연구 지원과 대책 마련에 나서야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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