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7월27일 국어학자 주시경이 타계했다. 향년 38세.주시경의 호는 한힌샘이다. 황해도 평산 출생이다. 주시경은 20세기에 개화한 모든 유파의 국어학과 국어운동의 맨앞에 우뚝 서 있다.
한힌샘이라는 호와 그의 짧은 삶 속에는 민족주의라는 고갱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와 공간은 민족주의에 일정한 진보성을 부여했다.
그의 언어민족주의는 우선 문자체계로서 한자를 버리고 한글을 쓰자는 주장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에서 교열을 보았고, 이 신문에 네 차례 기고한 ‘국문론’을통해 소리글자인 한글이 뜻글자인 한자에 견주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주시경은 거기서 더 나아가 국어에 들어온 한자어를 되도록 고유어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는 일본에서 한자어로 번역된 문법 용어를 무시하고 임(명사) 엇(형용사) 움(동사) 언(관사)억(부사) 놀(감탄사) 겻(조사) 잇(접속사) 끗(종지사) 등의 토박이말 용어를 만들어 자신의 문법체계를 세웠다.
표기체계로서 한자 대신에 한글을 쓰자는 그의 주장은 해방 뒤 북한에서 전면적으로 실현되었고, 남한에서도 일부 학술서적을 제외하고는 거의 실현되었다.
국어 어휘 안의 한자어를 고유어로 대체하자는 그의 주장은 북한에서 이른바 어휘정리사업을 통한 말다듬기로 구체화했고, 남한에서는 한글학회를 중심으로 한 국어순화운동으로 이어졌다.
너무 이르게 세상을 버린 탓에 주시경은 큰 학자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조선어 강습원의 일요 국어 강습을 통해 배출한 장지영 김윤경 김두봉 최현배 등의 제자들은 뒷날 국어학의 대가들로 자라 민족어의 파수를 맡았다.
세종이 봉건시대의 ‘훈민정음’을 만들어냈다면, 주시경은 시민사회의 ‘한글’을 만들어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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