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과 함께 ‘국민화가’로 불리는 서양화가 박수근(1914~1965) 화백의 기념관이 세워진다.박수근화백 선양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정탁영 서울대 미대 교수)는 최근 박수근 기념관 설계공모작을 확정하고 지상 2층, 200평 규모의 기념관을 박 화백의 고향인 강원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5,000여 평 부지에 건립키로 했다.
9월 착공해 내년 6월 완공되는 기념관의 정식 이름은 ‘양구군립 박수근 기념관’. 주전시실, 기념실, 수장고 등으로 꾸며지는 기념관에는 박 화백의 안경과 연적, 스케치북 등 유품 152점, 목판화 ‘농악’과 노인들을 그린 연필화 등 작품 3점, 백남준 박고석씨 등 국내 유명 작가들의 작품 100여 점이 전시된다.
작품구입비를 포함해 기념관 건립 예산은 21억 원이다.
기념관 설계를 맡은 이종호메타건축 소장은 “형체보다 화면의 질감을 강조한 박 화백의 화풍처럼,기념관도 건물 자체보다는 관람객이 ‘박수근’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기념관주변에는 박 화백이 즐겨 그린 느티나무를 10여 그루 심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건립은 양구군이 1998년 양구 출신인 박 화백을 기리기 위해 정탁영 교수, 홍석창 홍익대 미대학장, 한지작가 함섭씨 등 강원도 출신 작가들로 선양사업추진위원회를 만들면서부터 추진됐다.
위원회에는 박 화백 전시를 도맡다시피 해 온 박명자 갤러리 현대 사장, 박 화백의 장녀인 인숙씨와 장남 성남씨 등도 참여했다.
문제는 전시될 박 화백의 작품이 3점에 불과하다는 것. 이 작품들도 박명자 사장과 캐나다 동포 김선남씨가 기증했다.
3억~4억 원에 불과한 양구군의 기념관 작품 구입비로는 호당1억 원을 넘는 박 화백 작품을 구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재산가치를 중시하는 소장자들의 작품 기증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형편이다.
추진위원인 유홍준 영남대 교수는“박 화백은 20세기에 손꼽을 만한 몇 안 되는 작가인데도 지금까지 기념관 하나 없었다는 것은 우리의 수치”라며 “인구 2만 5,000여 명에 불과한 양구군이 번듯한박수근 기념관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학예연구관 확보와 함께 작품 구입을 위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고말했다.
■박수근은 누구
박수근 화백은 가난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간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은 작가다. 학력이라곤 양구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인 그는 12세 때부터 ‘밀레와 같은 화가’를 꿈꿨다.
화강암을 쫀 것 같은 두터운 화면의 질감(마티에르)이야 말로 그가 창조해 낸 가장 한국적인 화면으로 평가받는다.
잎이 떨어진 나무, 소녀와 시골 아낙을 즐겨 그린 그의 대표작은 ‘나무와 두 여인’ ‘아기 보는 소녀’ 등. 1953년 국전에서 특선,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국회문교위원장상을 수상했다.
■건립참여 장남 박성남씨- "뜻있는 분들 아버지 작품 기증했으면"
박수근 기념관 설계공모작 최종안이 발표된 20일 갤러리 현대에는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박 화백의 장남으로 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에 참여해 온 박성남(54)씨다.
19세 때 국전에 입선한 뒤 1986년 호주로 이민을 가 현재 호주한인 미술협회장 겸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누나 인숙(57)씨와 함께 아버지 기념관 건립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념관에 기증되는 유품 152점 모두 박씨가 30여년 간 고가구 안에 소중히 보관해 오던 것들이다.
선친이 낡은 종이 위에 깨알 같은 글씨로 ‘아방가르드’ ‘소박성’ 등 난해한 현대 미술의 개념을 적은 노트 등 ‘한국의밀레’를 꿈꿨던 아버지의 체취가 묻어 있는 유품들이다.
그는 “기념관은 예술가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후세에게 꿈을 심어주는 귀중한 자산”이라며 “기념관에 많은 외국 사람들이 찾아와 돌아가시기 직전 세계 순회전시를 생각했던 아버지의 바람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문화보존 차원에서 뜻 있는 분들이 아버지 작품을 기증해 기념관이 아버지의 때묻은 작품들로 채워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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