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히드 축출에 힘을 합쳤던 인도네시아의 정파들이 부통령을 비롯한 요직을 놓고 격돌,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신임 대통령의 정치력이 초반부터 시험대에 올랐다.특히 과거 32년 군사정권의 기반이었던 골카르당과 군부가 집권을 도운 대가로핵심 요직 할당을 요구하고 나서 ‘수하르토 망령’이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주요 정파들은 당초 22일 회동에서 메가와티 옹립을 결정한 뒤 당분간 부통령자리를 비워두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그러나 정국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자 조기 선출로 방향을 틀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정권교체와 함께 ‘메가와티이후’를 노리려는 정파간 권력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국민협의회(MPR)는 25일 오후 골카르당 당수이자 국회의장인 악바르 탄중,이슬람계 통일개발당(PPP) 대표 함자 하즈, 퇴역장성으로 전ㆍ현직 정치ㆍ안보ㆍ사회조정장관인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와 아굼 굼멜라, 수하르토정권각료 출신인 시스요노 유도 후소도 등 5명의 부통령 후보를 놓고 비밀투표를 실시했다.
의석수로는 탄중과 함자가 앞서 있지만 군부는 유도요노와 아굼중 한 사람이 기용돼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메가와티는 물론, 제1당으로 ‘캐스팅 보트’를쥐게 된 집권 민주투쟁당은 투표에 앞서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의원 개인의 판단에 맡기며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정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려 있는 데다, 저마다 와히드 축출과정에서의 공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누가 부통령이 되더라도갈등과 혼란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수하르토를 축출한 학생, 이슬람 및 재야세력은 골카르당이나 군부 출신이부통령이 될 경우 다시 국민적 저항을 일으킬 조짐이어서 정정불안이 재연될 우려 마저 제기된다.
함자가 이끄는 PPP는 24일 성명을 내고 “탄중이부통령에 선출될 경우 신 정부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물론, 지지를 철회하겠다”고경고했다.
이날 투표가 진행된 의사당에는 2,000여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나라를망친 원흉인 골카르당과 군부 출신이 부통령에 선출되면 민주주의와 부패 척결 등 개혁 노력은 끝장 난다”고 외치며 격렬한항의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골카르당과 군부는 이미 메가와티의 측근들로부터 행정ㆍ자치, 국방, 경제장관 등 정부내 핵심 요직을 약속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메가와티는 신ㆍ구 세력의 이해를 조정해가면서 동시에 부패척결 등 개혁을 추진해가야하는 정치적시련을 맞게 된 셈이다.
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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