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반에 접어든 일본의 교과서 채택 공방전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역사교과서의 채택이 모두 불발, 공립중학교에는 거의 발붙이기 어렵게 됐다.도치기현시모쓰가(下都賀)지구를 비롯,‘만드는 모임’측이 전략 거점으로 삼았던 우익 성향 지역에서 일본 시민단체들이 이 교과서의 채택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이 추세 대로라면 공ㆍ사립을 통틀어서 문제의 교과서를 채택하는 학교는 1%에 못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에 따라 교과서 문제로 갈등을 빚어온 한일관계도 새 국면을 맞게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교실에서 축출된 왜곡교과서
11일 전국에서 최초로 문제의 교과서를 채택했던 시모쓰가 지구는산하 10개 기초단체가 모두 ‘반란’을 일으킨 끝에 25일 채택협의회를 다시 열어 당초 결정을 뒤집고 다른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다.
우익단체들이 시모쓰가에 이은 전략거점으로 채택에 총력을 기울여온 도쿄(東京)도의 스기나미(杉?)지구도 이날 다른 교과서를 선정했다.
이에 앞서 24일에는도쿄 치요다(千代田)구와 구니타치(國立)시도 다른 교과서를 최종 선정했다. 27일 채택심사를 벌이는 하치오지(八王子)시에서도 대학교수 24명이 반대 성명을 내는 등 시민운동이 불붙었다.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지사가 노골적으로 ‘만드는 모임’을 지원하고 나선 도쿄에는 아직 네리마(練馬)·도시마(豊島)·아타치(足立)구 등 ‘위험 지구’가 남아 있다.
그러나 각 교육위원회에는 “이미 대세가 결정됐다”는 분위기가 무성해 우익단체가 교두보를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와가야마(和歌山)현 니시무로(西牟)지구, 홋카이도(北海道)도카치(十勝)지구와 삿포로(札幌)시, 니가타(新潟)현 니가타시, 후쿠시마(福島)현 고리야마(郡山)지구, 치바(千葉)현 치바지구, 도치기현 우쓰노미야(宇都宮)지구등에서도 문제의 교과서는 탈락했다.
▲우익 패배의 배경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을 비롯한 시민단체와 지식인, 주민들은 검정 단계에서부터 전국적 강연회 등을 통해 반대운동을 펴왔다.
‘전국네트 21’은 시모쓰가 지구가 문제의 교과서를 채택하자 10개 교육위원회의 주소와 전화·팩시밀리 번호를 전국에 알리고 항의를 촉구했다.
스기나미구와 구니타치시에서는 채택협의회가 열린 당일 시민단체가 회의장을 인간사슬로 에워쌌다.
일본에서는 이례적인 풀뿌리 차원의 상향식운동은 정치권을 동원한 ‘만드는 모임’의 하향식 운동보다 교육위원들에게 훨씬 큰 압력으로 작용했다.
▲전망
이대로라면 전국 543개 교과서 채택지구 가운데 ‘만드는 모임’ 교과서를 채택하는 지역은 거의 없을 것 같다.
1999년 말 현재 전국 1만 1,236개 중학교 가운데 교육위원회가 교과서를 정하는 공립학교는1만497개, 교장이 선택하는 국립 및 사립은 839개이다.
공립학교 학생은 410만 7,590명으로 전체의 93.76%에 이른다. 사립학교 가운데현재 ‘만드는 모임’ 교과서를 택한 곳은 20개교 정도.
앞으로 남은 절반이 문제의 교과서를 택하더라도 전체의 3%에도 미치지 못하며, 잘하면 1% 내외로 묶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본 국민이 교실에서 문제의 교과서를 추방하더라도 교과서 검정과정에서 역사왜곡을 용인한일본정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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