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성폭력 피해를 당한A씨(25ㆍ여)는 수치심과 절망감을 무릅쓰고 피해 증거 채증을 위해 병원을 찾았지만 좌절감만 느껴야 했다.첫번째 찾은 종합병원에서는 “처녀막 파열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말만 듣고 돌아 서야 했고, 두번째 찾은 개인병원에서는 ‘처녀막 파열’ 진단을 받았지만 “진단서 발급은 곤란하다”는 차가운 대답을 들었다.
결국 A씨는 수소문 끝에 ‘한국 성폭력 위기센터’를 찾아 상담과 진료를 통해 진단서를 발급 받아 경찰에 신고할 수 있었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병원들의‘냉대’와 의료 지원 체계 미비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당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초기 증거물 채취, 임신 예방 처치, 성병 예방 등의 조치를 즉각적으로 취해야 하지만, ‘진료가까다롭고 번거롭다’며 문전박대하는 병원들이 적지 않아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진료거부가 이익’외면
지난 3월 중순 귀가 중 성폭력을 당한 B씨(23ㆍ여)도 비슷한 경우다. 피해 다음날 오전 곧바로 종합병원을 찾아 진단과 증거 채증을 하려 했지만 병원에선 “성폭력 피해자 전문 병원을 찾아 가보라”는 말만 했을 뿐 진료 조차 해주지 않았다.
한국성폭력 위기센터 김현정(金賢貞ㆍ31ㆍ여) 수석 상담원은 “성폭력 피해자의 특성상 진단 시간이 길고 정밀한 데다 증거 채증과 진단서 발급시증인 출석 등의 부담이 생길까 봐 병원에서 진료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때문에 피해자들이 수치심을 무릅쓰고 병원을 찾았지만 제대로 된 조치 한 번 못 받고 센터를 찾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올 2~5월 이 곳에 접수된 167건의 피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의료 지원’을 호소한 피해자들이 51%로 절반을 넘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로 접수 되는 피해 사례 중에서도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해 상담소가 직접 병원을 연결해 주는 경우가 한 달에만 15~20건에 달하고 한 달 평균 350여건의 상담 중 의료지원에 관한 문의가 30~40%에 달한다.
‘서울여성의 전화’ 이민주(李旻柱ㆍ여) 성폭력 상담센터 담당자는 “검사 도구가 없다며 세정제와 약만 주고 돌려 보내는 경우, 정액 체취 도구가 없다며 진단을 거부하는 사례는 비일 비재 하다”며“경찰 병원이나 상담 센터 등의 연계 병원이 아니면 피해자들은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없는 현실”이라고말했다.
■'전담병원 확충해야’
여성단체와 전문가들은 결국 전담 병원 지정의 확충과 성폭력 피해자 들에 대한 의식 제고만이 해결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행 성폭력 특별법 33조에는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ㆍ도 지사는 국ㆍ공립병원, 보건소 또는 민간의료시설을 성폭력 피해자의 치료를 위한 담당 의료기관으로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조중신(趙重信ㆍ49ㆍ여) 상담부장은 “이 조항이 강제조항이 아닌데다 전국 194개 지정병원도 상담소 등과 연계한 병원이 아닌 곳은 실질적인 운영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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