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희한한 일이 어디 한 둘이랴마는 요즘 가장 기막힌 것은 언론매체끼리의 이전투구다.입장이 다른 언론사들끼리 연일 칼럼이나 기고, 기획물, 심지어 스트레이트 기사까지 동원해 서로를 난타해대는 일이다.
국세청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만 따져도 족히 한달이 넘었다. 인터넷의 마구잡이 험담이나 욕설들 보다야 나름의 논리와 격(格)을 갖추고 있지만 근저에 깔린 정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언론 생산물도 하나의 상품이다. 느닷없이 전면적인 언론사 조사에 돌입한 국세청이나 공정거래위원회의 명분도 그렇거니와, 많은 언론학자들도 일반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동일한 기준이 언론사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작 언론사들끼리의 비방전에는 이 같은 논리가 배제돼 있다.
일반 기업들에서는 경쟁사 상품을 깎아내리거나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는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돼 있다.
비방전은 이런 기본적인 상도의마저 저버린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언론사들끼리 지면이나 전파를 통해 상대방을 비난해대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있다면 옴부즈맨 제도를 통한 혹독한 자기비판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언론은 누가 비판하느냐”는 우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미디어 비평이 과열됐다 싶을만큼 활성화해 있다.
내용의 공정성이야 어떻든 ‘기자협회보’나 ‘미디어오늘’ 같은 정기 미디어비평지가 여럿 있고 조직적인 언론감시활동을 펴는 시민단체나 인터넷 사이트들, 전문 학자들까지 즐비하다.
또 매체 비평 때는 국가기관이나 특정 단체 등을 대상으로 할 때처럼 그다지 조심 할 필요도 없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가장 쉬운 비판의 대상이 언론이다. 천박한 동업자 의식이 아니라, 정당한 경쟁을 얘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언론사들끼리 보도내용이나 논조를 문제삼는 것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이는 경쟁업체의 상품이 이러저런 하자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과 하등 다를 것이 없다.
더구나 객관적인 품질 차이가 아니라 사안을 보는 시각의 차이를 어떻게 문제 삼는다는 말인가. 전적으로 인정하기는 개운치 않지만 보수신문들이 주장하는 대로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다면 그건 우리 사회 구성원들 의식의 반영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지가 시장 진입에 일정부분 성공한 것도 딱 그만큼의 수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론개혁의 방향은 자명하다. 자유로운 매체 선택권을 저해하는 비합리적 요소들을 개선, 공정한 경쟁이 가능케 함으로써 언론시장의 건전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귀착점이다. 정부의 역할도 정확히 거기까지다.
어떤 경우든 생산물의 최종 심판자는 소비자다. 그러니 언론사들은 제발 유치한 싸움들을 중단하라.
기사내용이나 논조를 비방하는 것도 모자라 상대를 정부·여당이나 야당의 하부조직 따위로 자리매김 해놓으면 도대체 언론의 존재가치와 권위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네거티브 전략은 당장 알량한 반사 이익을 가져다줄 지 몰라도 결국은 언론 전체의 신뢰상실이라는 공멸의 상처를 남길 뿐이라는 걸 왜 모른는가.
이준희 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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