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국가에 대통령은 두 명 ’. 인도네시아 정국이 극단적으로 갈 경우이처럼 희화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압두라흐만 와히드 대통령이 국민협의회의(MPR) 탄핵 결정을 위법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통령궁의 권좌를 떠나려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세를 인정하지 않고 버티는 한 당분간 정치적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와히드는 MPR에서 권력승계를 승인받은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신임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을 넘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군과 경찰,의회,각료 상다수가 등을 돌려 기반이 와해된 와히드가 이같이 버틸 수 있는 것은 헌법상 자신이 비상사태 선포권을 갖고 있어 이날 내린 포고령으로 이미 의회,국민협의회(MPR),골카르당 등의 기능을 정지시킨 만큼 탄핵 결정이 법적으로 무효라고 주장할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군과 경찰 등이 이를 집행하지 않고 있어 실효성을 없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헌법은 탄핵 및 권력승계 요건,비상사태선포권의 내용을 엄밀하게 적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와히드가 퇴진을 거부하면서 대통령궁에 버티고 앉을 경우 인도네시아는 잠시나마 대통령이 둘이 있는 '이중권력'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물론 MPR에서 메가와티의 취임선서가 이뤄진 만큼 와히드의 권력 복귀는 이미 불가능해진 국면이다.미국도 이날 포고령 선포에 유감을 표시함으로써 와히드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메가와티 정권이 출범한 이후에도 인도네시아의 정국 안정을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와히드 탄핵에 일치 단결했던 각 정파들이 부통령과 각료 배분을 놓고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고,2004년 차기 대선을 향한 세 확복도 가시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메가와티 정권 창출의 최대 공로자인 아미엔 라이스 MPR 의장이 차기대권에 야심을 두고 있어 정국 주도권을 놓고 메가와티와 갈등이 빚을 가능성이 크다. 또 현재 부통령직을 놓고 연합개발당의 하무자 당수,골카르당의 악바르 탄중 당수가 경쟁하고 있으며.6월 정치·사회·안보 조정장관에서 해임된 유도요노 등도 여기에 가담할 조짐이다. 메가와티의 민주투쟁당은 의회에서 제1당이긴 하지만 과반수를 장악하지 못해 이들 정파간의 갈등이 일어날 경우 정국 불안은 불가피하다.
비상사태를 지지하지 않음으로써 와히드 탄핵에 주요 역할을 한 군부의 동향도 변수로 남아있다. 메가와티는 집권 기반강화를 위해 군부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지만 군 수뇌부가 대거 연루된 인권 유린 행위 진상 조사 및 사법 처리 등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른 군의 지지가 철회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프얀 야코브 자카르타시 경찰청장은 경찰에 대통령의 포고령을 이행하지 말라고 지시하고,MPR특별총회의 진행을 보호하는 등 메가와티 지지입장을 분명히 했다. MPR에 33석의 의석을 갖고 있는 군과 경찰의 지지로 메가와티의 권력 장악에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적 혼란이 계속될 경우 군이 이 같은 자세를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와히드 지지 세력이 다시 세를 모아 유혈폭력사태를 일으킬 가능성도 아직은 배제할 수 없다. 와히드의 정치적 고향인 동 자바 지역 주민들과 최대 이슬람 단체 나들라툴 울라마(NU)의 입장은 아직 확실치 않으나 와히드 지지자들이 기차편 등을 통해 자카르타로 집결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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