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와 가수와의 관계를 두고 말이 많다. 무조건 TV에 얼굴을 자주 비쳐야 음반이 많이 팔린다는 가수, 프로그램 성격에 관계 없이 인기가수가 나와야 시청률이 올라간다는 TV.과연 그럴까. 그래야만 하는 걸까. 근본적인 원인이무엇이든 양자의 이해 관계는 결국 TV와 가요계 모두에서 ‘음악’을 몰아내고 개인기, 춤, 토크 그리고 ‘유행’ 만을 낳고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TV에 의존하지 않는 가수들도 있다. 이들은 TV 대신 콘서트와 뮤직 비디오, 라디오, 음반을 통해 ‘음악’으로 대중을 만난다.
이들의 음악은 이른바 TV용 주류 음악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딴 ‘00표’ 음악이다. TV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에도 이들을찾는 대중은 의외로 많다.
때문에 시청률을 높이고 싶은 TV가 열심히 ‘러브 콜’을보내 보지만, 이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 윤도현 밴드-"콘서트하면 우리 아닙니까?"
윤도현 밴드는 새 음반을 내면 제일 먼저 콘서트를 연다. 얼마 전에도 5집 ‘An Urbanite’를 내자마자 대학로에서 콘서트를 가졌다.
8월 중순께앵콜 공연을 비롯해 연말까지 몇차례 더 단독 혹은 조인트로 전국을 돌 예정이다. 가을 축제 기간 동안 40여 대학에서 갖는 작은 콘서트까지 합치면올해도 줄잡아 150~200회에 달한다.
윤도현 밴드의 공연장은 언제나 사람들로 꽉 들어찬다. 얼마 전 공연 역시17일 간 내내 매진을 기록했다. 관객의 종류는 크게 둘로 나뉜다.
윤도현 밴드가 공연하면 수시로 찾아오는 고정 팬과 밴드의 명성을 듣고 처음온 사람들이다. 콘서트를 열 때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관객은 미리 새 음반을 구해 듣고 공연장에서 따라 부르기도 하고 공연이 끝난후 즉석에서 음반을 구입하기도 한다.
한번 공연이 열리면 음반 판매가 급신장한다. 말하자면, 콘서트는 윤도현 밴드의 주된 활동인 동시에 가장 효과적인홍보 수단인 셈이다.
5, 6년 전 데뷔 초기에는 윤도현도 TV를 홍보 수단으로 삼은 적이 있다.순위 프로도 나가고 노래만 할 수 있으면 쇼 프로도 출연했다.
하지만 곧 그만 두었다. “내 본래 색깔을보여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수라면 마땅히 해야 할” 라이브 대신 립 싱크를 요구했고 라이브를 해도 많은 경우 원하는 소리를 잡아주지 못했다.
또 프로그램 구성상 3, 4분 동안 두어 곡을 편집해 부르라는 요구도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오락 프로그램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말 잘하고 농담도 잘하는 그로서는 “한번 정도라면, 콘서트에서 내 얘기하듯 재미삼아 출연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하나라도 나가면 다른 것도 줄줄이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굳이 나가서 가수로서의 내 이미지를 망가뜨리기 싫었다”고한다.
지금도 윤도현 밴드는 자기 식으로 노래할 수 있는 한두 프로그램 외에는 TV에 출연하지 않는다. MBCFM ‘두시의 데이트’ DJ가 방송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고 그 역시 오래 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그가 이렇듯 자신의 뜻대로 TV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역시 콘서트로 만나는관객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무대를 보고 함께 공연장의 열기를 체험한 사람들은 TV 속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언제 어디서 공연을열든 찾아오고 음반도 어느 선 이상은 항상 나간다. 그것이 콘서트로 뜬, 윤도현 밴드의 가장 든든한 배경이자 자랑거리다.
▩브라운 아이즈-"뮤직 비디오가 우리대신 뜁니다"
‘브라운아이즈’(Brown Eyes) 1집의 판매량은 발매 한 달 반만에 35만 장에 달한다. 신인으로서는 말할 나위 없는 ‘대박’이다.
이들은 여전히 TV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뮤직 비디오가 그들을 대신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 마치 가수가 옷을 갈아입듯 6분 40초, 10분, 3분 40초로 각각 편집된 ‘벌써 1년’ 의 뮤직 비디오가 케이블과 공중파를 누빈다.
브라운아이즈는 19일 KBS ‘뮤직뱅크’ 1위 후보에 올라서도 출연을 고사했을 뿐 아니라 1집 활동기간 내내 TV에 얼굴을 비치지 않을 계획까지 잡고 있다.
이쯤되면 가수에 대한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잠시 얼굴을 ‘가리는’ 전략 수준은 일찌감치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기획사측은 “통상적인 아이돌(우상) 스타의 경로를 밟지 않기 위해” 방송 활동을 꺼린다고말한다.
사실 음반제작자들 사이에 “방송활동과 음반판매량은 별개”라는 인식은 이미확산되고 있으며 브라운아이즈는 그런 생각을 공격적으로 실천한 것이다.
방송출연이 잦은 아이돌 스타들이 실상 음반판매실적은 신통찮은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신인은 프로그램을 골라서 출연할 입장이 아니라 일단 TV활동에 나서면 이미지의 소모를 각오해야 한다. 자연가수로서의 수명은 짧아진다.
프로듀서 윤건(25) 보컬 나얼(24) 모두 매력적인 보컬과 작사ㆍ작곡 능력까지갖춘 실력파들이다. 그러니 기획사측에서도 굳이 방송활동으로 단기적인 승부를 걸 필요가 없다는 판단이다.
나중에 얼굴을 공개하더라도 KBS ‘이소라의프로포즈’ 등 노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만 출연할 예정이다.
대중과의 첫 만남도 역시 방송이 아닌 ‘전람회’라는이색적인 형식으로 준비했다. 계원예술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나얼이 8월 2일부터 12일까지 대학로 문예진흥원에서‘황(黃)과 흑(黑)의 조우’라는 이름의 전시회를연다.
윤건도 모습을 드러내 자작곡을 피아노로 연주한다. 그들의 신비감과 넘치는 재기를 표현하는 색다른 방식이다.
사실뮤직비디오 등으로 방송매체를 이용하면서도 출연을 거부하는 것은 일견 모순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성공했고, 이는 상당히 의미있다.
‘일단 얼굴을 알리고보자’ 는 생각으로 TV출연에 목을 매던 신인의 데뷔 관습을 과감하게 깬 것이다.
▩유희열표-수제품 같은 고급음악으로 승부
TV는 뮤지션에게도 음악 대신 사생활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더 기대한다.
그는“음악 외적인 이야기를 하며 음반을 파는 것은 겸연쩍다”고 한다. “영화감독에게 작품을 묻듯,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정말 고맙게 나가지요.
자신의 창작물을 해설하는 것은당연한 의무니까요.” 그런 프로그램은 좀처럼 없다. 요즘에는 라디오도 진지한‘음반 리뷰’ 대신 이러한 TV의 속성을 따라 차츰 ‘말’이많아졌다. 그래서 라디오 출연 섭외도 조심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도TV의 위력은 인정한다. 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을 해 가면서까지 100만 장, 200만 장의 ‘블록버스터’를지향하지는 않는다.
“연예산업이결국 ‘나를 알리는’ 일인데 남과는 다른 방식이어야지요.” TV출연이나 호화 뮤직비디오 등 ‘성공 공식’, 그리고 소위 ‘팬관리’ 같은 것들은 그와 무관하다. 그럴 여력이 있다면 음악에 더 투자하겠다는 생각이다.
요란스러운 홍보 없이도 사람들은 그의 음반에 열광한다. 5집 판매량이 벌써 30만장. 발라드 뮤지션으로는 드문 꾸준한 인기다.
그것은 ‘유희열’이라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다. 애잔하고 감성적인 선율,그리고 구어체적인 가사로 ‘외사랑의 아픔’을 너무도 정확하게 집어내는 섬세함.
그렇다고 소녀적 감수성을 쏙 뽑아 놓은 타이틀곡만으로는 그의 음악을 설명할 수 없다. 프로젝트밴드 ‘토이’에는이승환, 윤상, 롤러코스터 등 믿음직한 뮤지션들이 참여해 시너지 효과를 낸다.
마치 잘 만든 수제품처럼 고급스러운음반, 그래서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면 들어보지 않고도 저절로 손이 가게 마련이다.
그는1998년 예술의 전당, 99년 세종문화회관에 이어 다음달 10~12일에 LG아트센터에서 세 번째 콘서트를 갖는다.
하지만 이미 표는 매진된 상태.사이트에 띄우자마자 세 시간 만에 4,000여 석이 모두 팔려 나갔다.
음반이든, 콘서트든 ‘블록버스터’보다는‘예술’을 지향하는 그의 깐깐함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다.
그는 대중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잡다한것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음악으로 쏠리게 만든다. 이것이 ‘유희열 브랜드’의 관리법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양은경기자 ke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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