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공원 제3편이 나왔다. 나는 공상과학 영화를 별로 즐기는사람이 아니지만 쥬라기공원 시리즈는 몇 번이고다시 봐도 전혀싫증이 나질 않는다.그래서 아들 녀석을 충동질하여 쥬라기공원1편과 2편의 비디오를 구입해 두었다. 이번 3편도비디오로 나오면 바로살 계획이다.
“아빠는 공룡영화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아들녀석의 핀잔에 혼자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연과학 중에서도 내가 생물학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레 삭막한 로봇들이 등장하는 영화보다는 살아움직이는 동물들의 영화를더 좋아하는 건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쥬라기공원 시리즈를 좋아하는 진짜이유는 그 영화들이 지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모여앉아 무서운 장면마다 비명이나 질러대는 영화를보고 무슨 지(知)를 들먹이느냐 하겠지만 쥬라기공원 촬영장에는 잭 호너(Jack Horner)와 로버트배커(Robert Bakker)같은 우리 시대제일의 공룡학자들이 늘함께 했다.
그들의 치열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영화들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말할 나위도 없고 생물학을 전공하는 나같은 어른들도 빨려들고 마는 것이다.
쥬라기공원 1편에 보면 이지구에 살았던 동물들중 가장 무서운존재였다는 티 렉스(T. Rex)가 자동차를 뒤쫓는 장면이나온다.
공룡이 변온동물 이었다는 기존의 학설을 뒤엎고파충류보다는 포유류에 가까운 항온동물이라는 사실을 밝힌로버트 배커의 이론에 따라 티 렉스의 주행속도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만든 장면이다.
막연한 공상과학영화가 아니라 과학에 근거한 과학공상영화 이기에 그만큼 설득력이 강한 것이다. 로봇들이 등장하는 영화들도 나름대로 내가잘 이해하지 못하는과학적 근거를 갖고있으리라 믿는다.
요사이 우리 안방극장에는 사극 열풍이 뜨겁다. 나역시 오랜 외국생활을 접고 귀국한 이래줄곧 사극에서 눈을떼지 못하고 있다.
‘장희빈’으로시작하여 ‘용의 눈물’과 ‘허준’을거쳐 ‘태조 왕건’에 매달려 있다. 평일 저녁에는 사실 텔레비전을 볼시간 여유가 없는것도 이유이지만 어쩌다 시간이 나도 다른연속극들에는 눈길이 잘가질 않는다.
그런데 사극을 보면서늘 무언가 허전한느낌을 지울 수없다. 어차피 극화한 것이니 사실에 얼마나가까운가를 물을 필요는없겠지만 그 당시 정말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으며 그당시 사람들은 실제로어떻게 살았을까 궁금함을 어쩔 수 없다.
책방에 가서‘OO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한 권으로 읽는 OO왕조실록’ 등의 책들을 사다 들쳐보지만 속 시원한 답을 찾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극을 볼 때마다 안사람과 늘 주고받는 말이 있다. 국사학자 여러분을 집에 초청하여 함께 보면 얼마나좋을까.
내 친구 중에는집안에서 어느 정도이 문제를 해결한 이가 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사극도 좋아하는 데다 워낙 책읽는 것을 좋아하여 전문 국사학자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는 것이다.
요즘은 태조 왕건을 함께 보는데 후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관한 역사책들을 죄다 구해 읽고는 “저건 사실은 이러저러 했는데 흥미롭게 만드느라고 조금 바꿨다”는 식의 설명을 해준단다. 그 친구가여간 부러운 게아니다.
요즘엔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이 방송저 방송 사극천지다. 여러 사극들을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냈으니 자칫하면 사극에 식상한 시청자들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불쑥 아무 방송도사극을 보여주지 않는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그렇다면 이젠좀더 지적인 사극을 보여줄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언제까지 여인들의 치마폭과 당쟁의 권모술수에만 기댈수는 없지 않은가.
기획 및 제작과정에 역사학자들을 모셔함께 만드는 것은 물론 아예 그들을 화면에 불러들이는 것도고려해 볼만하다.
다른 연속극들도 대체로 그렇겠지만 잘나가는 사극들도 매주한 시간 짜리둘을 채우기란 그리쉬운 일이 아닐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별로 중요하지도 않은대화를 이 사람저 사람 반복하는 장면들이 너무나 자주나온다. 폐하에게 똑같은 진언을 왜 그렇게여러 신하가 번갈아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않는다.
극 자체는그저 한 30분내지 40분 정도로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자들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토론하는 프로그램을 덧붙이면 어떨까 싶다. 이를테면 사극과‘역사스페셜’을 한데묶는 그런 프로그램 말이다.
우리 방송국들은 우리국민의 지적 수준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내가 교육방송에서 대학 수준의 강의를 무려 6개월씩이나 계속할수 있었던 것이나 얼마 전 너무 갑자기 중단되어 아쉬움을 남긴 도올선생의 강의가 황금시간대를 점유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우리 사회의 지적갈증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좋은예였다.
이젠 우리도좀 대접받는 시청자가 되고 싶다. 지적인 사극을만들면 훨씬 더많은 이들의 눈과귀를 붙들 수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서울대생명과학부 교수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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