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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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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섬진강을 처음 보았습니다. 꽃피는 4월이었죠. 강변에는 막 지는 매화의꽃잎이 날리고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한마디로 환상적이었죠. 그런데 강가에 앉아 한참동안 한숨을 쉬었습니다. 한숨짓게 만든 것은꽃이 아니라 맑은 강물이었습니다.

물론 고요하게 흐르는 티 없이 푸른 강물은 한숨의 이유가 될 리 없습니다. 새삼스럽게 고향의 강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제 고향은 동해안의 작은 도시입니다. 외곽으로 양양 남대천 크기의 강이 흘러동해로 들어갑니다. 어릴 적 바닷물과 민물을 모두 경험하는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은어는 물론 연어, 송어, 심지어 야구방망이만한 숭어가 맨 눈에보일 정도로 많았습니다. 작은 지류나 수초가 우거진 곳에는 귀하디 귀한 강붕어가 살았습니다. 그냥 떠먹어도 좋을 만큼 물이 맑았던 것은 물론이죠.

그러다가 강이 큰 시련을 만났습니다. 강의 최상류에는 시멘트공장이, 하류인 바닷가에는커다란 항구가 들어섰습니다.

생산된 시멘트를 항구까지 직통으로 운반하는 콘베이어 벨트가 공장부터 항구까지 강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강이 망가지는것은 잠깐이었습니다. 얼마 후 물은 쌀뜨물처럼 변했습니다. 물고기들은 수면에 둥둥 떠서 숨을 헐떡거리다가 결국 사라지고 악취가 자리를 대신했습니다.고향에 가면 일부러 꼭 찾았던 그 강을 그 뒤로 다시는 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이 흘렀습니다. 환경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감시자들이 많아진데다 시에서 관심을 기울인 덕택에 그 강물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강을 찾았습니다. 물은 분명 맑아져있었습니다. 듬성듬성 낚시꾼이 앉아 있는 것을 봐선 물고기들도 돌아 온 모양입니다. 그러나 분명 옛날의 강은 아니었습니다.

강의 양 어깨는 무거운 석축이 짓누르고 있고 가로질러 두꺼운 보를 쌓아놓았습니다.보 위쪽으로는 정화시설을 만들려 했는지 강바닥 전체를 수영장처럼 시멘트로 발라놓았더군요.

물만 살았지 강은 여전히 죽어 있었습니다. 한 번 칼을댄 자연은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론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될 것입니다.

맑은 계류에 몸을 담그고, 펄떡거리는 은어를 잡는 남대천 사람들이 부러워서 해본 이야기입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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