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영정상화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해 채권단 주도로 외국 컨설팅 기관에 경영 컨설팅 및 실사를 의뢰하는 사례가 급증하고있으나 컨설팅 결과에 반발하며 다시 실사를 받겠다는 사례가 빈발하는 등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금융계와 업계 일각에서는 “채권단이 입맛에 맞는결과물만 받아들이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채권단 내부에서는“컨설팅이나 실사를 지나치게 무성의하게 하는데다 국내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 컨설팅 결과 못 믿겠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대유화에 대한 아더앤더슨의 컨설팅. 아더앤더슨은 2개월여간에 걸친 작업 끝에 지난달 초 “대주주 감자와 채권단 출자전환없이는 독자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면서도 자산(2조8,000억원)이 부채(2조6,000억원)를 초과하는 것으로 재무상태를 진단했다.
그러자 자산이 부채를 초과할 경우 지분 완전감자시 증여세를 내야할 수도 있다는데 부담을 느낀 채권단은 다시 실사기관을 선정해 재실사를 받겠다고 선언했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아더앤더슨은 2003년부터 유화 산업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경기를 전망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합의 경우도 마찬가지. 실사를 맡았던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사가 내놓은 처방은 1조2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채권단은 이를 토대로 채무재조정을 위한 채권단 서면결의에 들어갔지만 40%의 동의밖에 얻지 못한 채 부결됐다.
채권단 한 관계자는 “고합의 재무상태나 향후 현금 흐름 등을 감안할 때 최소 2조~3조원의 출자전환은 이뤄져야 그나마 회생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렇게 낙관적인 컨설팅 결과에 근거해 채무재조정을 했다가는 결국 ‘밑빠진 독에 물붓기’ 격이 될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결국 채권단은 방향을 틀어 고합을 ‘굿-배드 컴퍼니’로 기업분할하기 위해 용역기관에 재실사를 맡기는 방안을 놓고 다시 서면결의에 들어가기로 했다.
■ 돈, 시간 모두 낭비
외국 컨설팅 기관에 의뢰해 컨설팅이나 실사를 받는데 드는 비용은 사업장 수, 투입 인력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통상 적게는 2~3억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을 넘는다.게다가 소요 기간도 무려 2~3개월 가량에 달해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엄청난 낭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星洙) 연구원은 “외환 위기 이후 채권단이 ‘베스트 프랙티스’를 지향하며 외국기관으로부터 컨설팅을 많이 받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자세를 갖추지는 못한 것 같다”며 “입맛에 맞는 결과만을 받아들인다면 컨설팅을 받는 의미가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채권단 내부에서는 외국 컨설팅 기관의 무성의함에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 국내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외국의 컨설팅 기법을그대로 도입하는데다 훈련이 덜 된 ‘마이너’ 인력만 투입해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시중은행 한 여신담당 임원은 “3월 대우자동차에 대한 아더앤더슨 컨설팅에서 2003년까지 부평공장을 폐쇄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인 경우”라며 “첨예한 사안인 인력구조조정 등 국내 특수 사정을 전혀고려치 않아 정부와 채권단이 보고서 파문을 진화하느라 애만 먹었다”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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