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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가는길 / 월드컵과 나 - 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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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가는길 / 월드컵과 나 - 홍명보

입력
2001.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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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월드컵 진출은 기억하는 대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남북한과 일본, 사우디아라비아,이란, 이라크 등 동북아 3개국, 중동 3개국이 2장의 티켓을 놓고 혈투를 벌였다. 우리는 첫 상대인 이란을 이겼지만 이후 두 경기를 모두 비겨팀분위기가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일본전 0_1 패배. 패했다는 것 보다는 무기력한 경기를 벌였다는데 많은 질책이 쏟아졌고 수비수로서 골을 내준데대해 큰 책임을 느껴야 했다.탈락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서 우리는 북한과 마지막 경기를 했다. ‘다끝났구나’하고 그라운드를 나서는데 일본이 이라크와 2-2로 비겼다는 소식을 듣고 “이게꿈이냐, 생시냐”며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이후 8개월이 지나 드디어 본선 무대에 섰다. 선수들은 전대회서의 3전패의 참패를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각오가 대단했다. 첫경기인 스페인전서 나는 막판 행운의 프리킥을 성공시킨 뒤 종료직전 페널티박스 오른쪽에 있던 서정원을보고 전진패스로 동점골을 어시스트, 감격의 무승부를 이끌어 냈다. 두번째 볼리비아전서는 필승을 기대했지만 골운이 따르지 않아 또다시 무승부를 기록,16강진출은 멀어져 갔다.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서 선수들이 갖는 심적부담은 상상이상 이었다. 반드시 이겨야만하는 절박한 상황인데 상대는 우리보다 두수쯤 위인 독일. 우리는 한편으로 얼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판사판이라는 생각으로 무섭게 그라운드를 누볐다.

전반 3골을 내주었지만 후반 무더운 날씨에 지친 독일에 맹반격을 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또 다시 세계와의 격차를 실감해야 했다. 그러나지금에 와서 우리는 정신력을 앞세운 투혼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우리는 경기를 마치고 숙소에서 “너무 주눅이 들었다. 다음에는 훨씬 더 잘할수 있을 것이다”는 말로 아쉬움을 달랬다. 결과적으로 이 말은 4년 뒤 또 틀리고 말았지만 말이다.

홍명보(32)는 1990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뒤 이탈리아, 미국, 프랑스 등 세차례월드컵에 출전, 세계수준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국내 선수중 A매치 최다출장기록을 세웠고 현재 일본 가시와 레이솔에서 활약하고 있다.

정리=이범구기자

lbk1216@hk.co.kr

■94년 미국대회

미국은 축구에 관한 한 불모지였으나 세계 최대의 스포츠 시장을 흡수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장기 포석에 의해 1994년 대회 개최지로 선택됐다.

흥행이 우려됐으나 90년 이탈리아 대회보다 100만명이 더 많은 356만여명이라는 최대관중이입장했고 총수입 역시 최고액인 3조2,000억원을 기록했다. 예선부터 화제가 만발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가 본선진출에 실패하고 루마니아 노르웨이가신흥 강호로 부상했다.

최고 스타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약물복용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축출됐고 미국전서자살골을 넣어 예선탈락의 빌미를 제공한 콜롬비아의 수비수 에스코바르는 귀국 후 피살당했다.

준결승서 스웨덴, 불가리아의 돌풍을 잠재우고 결승에 진출한브라질과 이탈리아는 연장까지 득점 없이 비긴뒤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 바조의 실축으로 브라질이 3-2로 승리, 사상처음 4번째 우승국이 됐다. 바조는 이때의 페널티킥 실축으로 장기간 침체에 빠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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