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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오늘 하는 말, 어제 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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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오늘 하는 말, 어제 했던 말

입력
2001.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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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신문을 읽다 보면 언젠가 듣던 말들이 자주 나온다. 언제 듣던 말인가 오래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 자주 듣던 말이다.그 시절에 야당과 민주화운동세력은 세계 주요국들의 대한국 정책, 특히 미국의 시각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미국 정부나 의회, 신문 방송, 이런저런 연구소 등에서 한국 정부의 문제를 지적하는 말이 나오면 크게 고무되고 기대를 품었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내정 간섭’이니 ‘독립국가의 자존침해’니 ‘사대주의’니 하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이런 행태가 되풀이 되고 있다.

세계의 언론관련 단체들이 이 사태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각자 유리한 대목을 끌어다 자기입장을 변호하고, 문구해석이 틀렸느니 맞았느니 격투를 벌리고 있다.

최근엔 미국의 하원 의원 몇 명이 황장엽씨를 초청하고, 한국의 언론자유를 우려하는 서신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사실을 놓고 다시 ‘사대주의’ ‘내정간섭’ 논란이 요란하다.

군사정부 시절 미국의 한마디 한마디를 하느님 말씀처럼 생각하던 야당은 지금 여당이되어 ‘내정간섭’과 ‘사대주의’ 론으로 미국과 야당을 동시에 비난하고 있다.

과거정권을 잡고 있을 때 툭하면 ‘내정간섭’ 과 ‘사대주의’론을폈던 오늘의 야당은 이제 황장엽씨를 초청하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신을 보낸 미국 일부 의원들의 주장을 대변하기에 바쁘다.

한국은 많이 변한 것 같지만 변하지 않았다. 정권교체를 했지만 여당이 하는 말, 야당이 하는 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민망한 것은 여야의 입장이 바뀌어 한 입으로 과거와 정반대의 주장을 펴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일이다.

총칼로 언론을 탄압하던 정권에서 입 다물고 요직에 앉아있던 사람이 오늘 언론자유를 외치고, 과거 언론자유를 외치다가 감옥까지 갔던 사람이 오늘 언론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외친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어떤가, 어느 편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하지 자신의 소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소신 같은 것은 필요하지도 않다.

최근의 사태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만인의 전쟁상태’ ‘극단적 편 가르기’ ‘동지 아니면 적’ 등 온갖 우려의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분명히 위기다. 나는 이 위기의 본질이 각 개인의 정체성 상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만인이 목청을 높여 어느 한 쪽 편을 들고 있지만, 그것이 진정한 자신의 소리가 아닌 경우가 많다.

왜 그 쪽편을 들어야 하는지, 왜 편가르기에 가담하고 있는지 모르는 채 서로 삿대질하며 증오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토론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이런 혼란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있다.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하고, 특정신문을 비판하고, 잘 아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언론사끼리 서로 비판하면서 ‘성역’을파괴해가는 것은 토론문화의 정착에 필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비판이 확고한 소신에 근거하지 않고, 그때그때의 입장과 정서에 따라 달라진다면 토론문화가 어떻게 성장하겠는가.

누구나 자기 생각을 말 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말하기 전에 자신이 어제 어떤말을 했고, 오늘 무슨 말을 하고 있으며, 내일 어떤 말을 하게 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말이 달라졌다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하나의 인격체가 하는 말에는 진실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말은 소음이다.

어제 우리는 총칼 아래 있었으니 용기 있는 소수를 제외하곤 할 말을 할 수 없었다.오늘 우리는 총칼의 위협에 떨고 있지 않다.

정부가 세무조사라는 무기로 언론을 탄압한다는 공격을 받고 있으나 언론기관 아닌 일반 국민에 해당되는말은 아니다.

더 토론하고 더 싸우고 더 시끄러워도 좋다. 다만 소음이 아닌 말로, 어제 오늘 내일이 연결되는 소신으로 말해야 한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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