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4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에 백남순(白南淳) 외무상을 참석시키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기대됐던 남북, 북미 외무장관 회담이 불가능하게 됐다. 백 외무상의 불참 결정은 북한이 미국과 남한의 동향을 좀더 관망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북한이 백 외무상 대신 차관급대사를 수석대표로 하는 불과 3명의 대표단을 파견키로 결정한 데에는 북한이 뉴욕채널을 통해 접수 받은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노이에 올 차관급 인사는 한국, 미국 외무장관과 중요한 얘기를 나눌 처지가 아닐 것 같다. 우선 격이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중요한 메시지를 가져올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이다.
최근 관영매체를 통해 잇따라미국과의 불공정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북한은 미국이 제시한 대화의제, 특히 재래식 무기 위협 등을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측이 지난달 7일 북미대화 제의 직후 ‘공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대화의지를 의심하면서 ‘아직도 공은 미국에 있다’는 입장인 것이다.
백 외무상의 불참은 우리 정부의 대북 대화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당국간 회담이 막힌 상황에서 남북 외무장관회담을 통해서나마 대화 재개를 모색하려 했던 정부로서는 좀더 인내심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수일 내 북한으로부터 (북미대화 관련 제스처가) 올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도 북한의 입장을 재조명할 필요성을 느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우리 정부가 ARF와함께 개최되는 아세안 확대외무장관회의를 통해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추진키로 결정함으로써 초점은 한일관계의 냉각국면 해소 여부에 모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승수(韓昇洙) 외교장관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일 외무 장관을 상대로 역사교과서 왜곡의 부당성, 남쿠릴어장 조업 갈등 등을 거론, 일본측의 전향적 자세 전환을 촉구할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한 당국자는 “29일 참의원 선거를 앞둔 일본 정부가 국내 정치상황으로부터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 입장을 견지해온 다나카 장관과의 회담은 생산적일 수 있다” 고 말했다.
이러한 말로 미뤄 정부는 참의원 선거후 일본 정부가 ‘합리적인’ 외교 노선을 걸을 수 있도록 이번 외무장관회담에서 집중 설득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는 듯하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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