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등과의 공동행동보다는 독자노선을 걷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시해 MD 찬반을 둘러싼 국제 역학 관계에 변화가 예상된다.푸틴 대통령은 18일 크렘린궁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내외신 합동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의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탈퇴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의 공동행동을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특히 중국과의 공동대응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라고 말했다.
이번 회견은 크렘린 공보실이 1주일 전부터 예고한 것이어서 푸틴이 치밀한 계산을 거쳐 MD 체제에 대한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이 발언은 16일 모스크바에서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과 러중 우호친선 협력조약을 체결한 지 이틀만에 나온 것이어서 푸틴이 ‘독자 노선’을 강조한 진의가 무엇인지 주목된다.
미국의 독주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과 새로운 연대의 초석을 깔았지만 적어도 MD 문제에 관한 한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푸틴 이날 “가장 중요한 대응 기준은 러시아의 ‘국가안보 이익’”이라고 밝혀 중국과의 입장차가 부각되고 있다.
푸틴의 발언은 러시아가 중국과는 달리 미국의 MD 구축에 대처할 독자적인 ‘수단’과 ‘재원’을 지니고 있다는 전략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보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20기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단탄두(單彈頭)라는 약점을 안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MD 체제가 구축될 경우 ICBM의 위력을 잃게 된다.
하지만 6,000여기의 ICBM을 보유하고 다탄두 장착 기술을 가진 러시아는 미국이 추진중인 100기 정도의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는 상호확증파괴(MAD)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런 전략적 위상은 러시아가 ABM 협정 개정 문제를 미국과 협상을 통해 해결할 여지가 많다는 점을 시사한다.
심지어 MD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러시아가 미국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얻을 경우 ABM 협정에 대한 타협을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또 러시아는 미국과 보유 핵탄두를 1,500기 이하로 줄이기로 합의할 경우 핵탄두 유지에 드는 국방 예산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된다.
전역 미사일방어(TMD)체제가 구축될 경우 러시아도 요격 미사일을 수출하는 실리를 챙길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부시 대통령과 MD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개인적 친밀관계를 쌓고 있다”는 푸틴의 발언이 미국과의 타협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이 같은 배경에서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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