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장승업 역)의 대역을 맡은 중앙대 미대 김선두 교수. 한번은 화선지 위로상투 끝이 나와 NG, 또 한번은 종이 중간에서 우측으로 벗어나 그림을 그려 NG를 낸다. 각오한 일이다.임권택(65) 감독, 담배 한 대 빼물고. “그림만 그릴 줄알았지, (연기)감을 잡을 때까지 땀 깨나 흘리겠구만.”
안광이 지배를 철한다. 장승업이 일필휘지를 위해 화선지에 온 신경을 쏟듯,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장승업이 화선지 위에 그림을 그릴 때, 그는 필름 위에 그림을 그린다. 마치 자신이 장승업이 된 것처럼. “장승업을 보면 내가보여.”
‘취화선(醉畵仙)’ 촬영이 16일부터 시작됐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에는 장승업이 실제 그림을 그렸던 대원군 시절 경복궁을 중건한 도편수 이승업의 집이 옮겨와 있다.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임 감독도 100년 전으로 돌아가있었다.
“예술가란 뭔가.정점에 올라도 끝없이 거듭나고자 치열하게 고뇌하는 존재이다. 나 역시 ‘임권택 감독은 최고’라고 사람들이 말하지만, 작품마다 새로 나고 싶다.
그 욕망과 갈등. 영화와 그림이라는 장르는 다르지만 작업의 고충과 열정, 창의력에서 오는 기쁨. 이 시대에 왜 장승업인가. 그의 삶이야말로 시대를관통하기 때문이다. 나와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츈향뎐’이 소리와 영상의 어우러짐이라면 ‘취화선’은 ‘영상으로 그리는 그림’이다. ‘츈향뎐’이 그렇듯, ‘취화선’도 오랜 세월 임 감독의 몸속에서 곰삭아 나온 것이다.
30년 전부터 그에게 장승업은 ‘화두’ 였다. 고아, 고용살이, 술과 여자를 좋아하면서 임금 앞에서도 내키지 않으면 붓을 던지고 도망치던 관념산수화의대가.
지난해 칸영화제서 돌아와 “뭘할까” 생각하던 임 감독에게 이 파란만장하고, 천재적인 화가가 다시 찾아왔다. 12월 서울대에서 열린 장승업전시회와 세미나에서였다.
임 감독이 담고자하는 것은 분명하다. 시대와 인간과 그림. 시작은 늘 막막하다. 소리와 영상의 ‘춘향뎐’ 때도 그랬다.
임 감독으로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언제나 길은 있었다. 가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정신없이 걸어가고 나면 “아! 이것이었구나”라는 느낌. ‘춘향뎐’에서그것은 ‘판소리의 흥과 한’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취화선’에서 그것은 무엇일까. 임 감독의 매서운 눈초리와 정일성 촬영감독의 카메라 초점이 붓끝에 쏠려있는 것을 보면 한 인간의 삶을 집약시킨 선의 미학이아닐까.
임 김독과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의 제자들이 그리다 만 장승업의 작품에 직접 ‘화룡점정’을 해야 하는 최민식의 조심스런 대화가 이를 증명해준다.
“마지막 산 밑에 있는 길을 그리는 것을 할 수 있겠어?” “어제 연습했습니다. 될 것 같습니다.”
알아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장승업의 삶과 작품세계는 물론이고 당시 화구,소품, 시대상황 등. 임권택 감독은 복이 많다.
영화할 때마다 늘 도와주는 사람들이 달려온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몰라 조마조마한 도올 김용옥까지약속을 지켰다.
미국으로 가기 전 날 그는 임 감독을 만나 시나리오를 손질해 주기로 약속했다. 대사의 품격을 위해 그는 지금도 매일 대사를 고쳐미국에서 팩스로 보내오고 있다. 9월이면 돌아와 촬영현장에서 직접자문도 해주기로 했다.
젊은 감독들의 어설픈 타협과 게으름을 꾸짖는 듯한 노감독의 식지 않은 실험정신과 열정은 어디서 올까.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안타깝게도우리 자신부터 그것을 모르고 있잖아.” 제작비 50억 원의 ‘취화선’은 12월까지 촬영을 끝내고, 내년 봄이면 묵향 가득히 내뿜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취화선' 촬영현장에서 임권택 감독. 그 무서운 여전한 눈빛.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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