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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소름' 음침한 아파트…감춰어진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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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소름' 음침한 아파트…감춰어진 기억

입력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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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투성이 인물들의 인연의 비밀이 드러나고…어느 구석에서 틀림없이 뭔가가 썩고있을 것 같은 음침한 아파트. 모두들 떠나려 하는 곳에 여전히 살고 있거나 새로 이사를 들어오는 사람들. 영화 ‘소름’의 조연은 못 하나만 박아도 곧 허물어질듯한 30년 된 미금아파트이다.

룸살롱 종업원인 여자친구가 사기를치고 도망가는 바람에 직장에서 ?i겨난 택시기사 용현(김명민), 아이를 잃어 버리고 남편에게 매일 두들겨 맞는 편의점 직원 선영(장진영), 호러소설을쓰는 게 꿈인 작가(기주봉). 미금아파트에 꼭 어울리는 ‘막장’ 인생이다.

제5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폐막작‘소름’(20일 밤12시 상영)은 이런 막바지 인생들의 각막 뒤편에 숨은 기억과 오늘의 그들을 씨줄과 날줄로 직조한다.

그들 각막을 뒤집어 새로운 사실을 들추어 내지는 않으나, 그들의 시선을 통해 인연의비밀을 보여준다.

504호에 이사 온 용현에게 세상의‘죽음’은 아무런 동요도 일으키지 않는다.자신이 세 들기 직전 시나리오 작가인 용태가 죽었건, 30년 전에는 바람난 남편이 아내를 죽인 장소이건 상관없다. 이소룡의 흉내를 내는 그의 모습은스라소니를 닮았다.

선영이 죽인 남편을 암매장할 때도 그는 그저 고양이 한 마리를 묻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남편을 죽인 선영도 이런 ‘죽음’이 처음이 아닌 것 같다.

영화는 많은 의문을 던진다. ‘잃어버렸다’는 그녀의 아이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30년 전 실종됐다는 504호 아이, 이제 서른 살이 된 그는 어디에 있을까.

용현의 엉덩이에 있는 화상 자국은 무엇일까.작가는 왜 죽은 504호 용태의 시나리오를 몰래 태우고 있었을까.

용현 애인의 패물이 왜 용현의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일까. 용현과 선영이 과연사랑을 하기는 한 것인가.

“이 놈(햄스터)이 어떠냐 하면, 외로울까봐 친구 한 놈을 넣어주면 다음날 잡아먹어 버려. 귀여운 놈.” 용현은 자신이 길렀던 햄스터처럼 선영을 동반자로만들지 못했다.

누군가를 동반하기에 그의 삶은 너무 척박했고, 그것은 슬픔이자 공포의 원천이다. 장르의 공식도 따라잡지 못한 채 허우적거렸던 지난해의 공포영화, 그리고 ‘일상’의 기계적 나열에 그친 관습적 최근 영화에 비하면 ‘소름’은 분명 ‘작품’이다.

무생물의 ‘공간’이 주는 두려움의 질감이 톡톡하고,일상에서 악마적 본성을 제대로 추출했다. 문제는 제목이다.

‘소름’이란 단어는 관객에게 ‘놀랄 준비를 하라’고 암시한다. 여기에 ‘속아’ 소름 끼칠 때만을 기다리면 색다른 영화의 묘미를잃어버린다.

막바지에 인연의 고리가 확 풀려 버리는 것도 당혹스럽다. 사사회에서 ‘무슨 영화냐’는 당혹감과 ‘색다른 작품’이라는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극장개봉 8월4일.

■"윤종찬 감독- 김명민.장진영 연기자로 거듭나"

단편 ‘메멘토’가 그렇듯, 인간과 인간이 부딪쳐 만드는 비극을 그려보고 싶었다. 진정한 공포는 귀신이나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인간의 내부에 숨겨진 일종의 악마같은 ‘본성’에서 온다. 사람들이 부대끼며 만들어 내는 비극성!

촬영분량이 많았다. 15만자를 찍고(일반 영화 상영은 2만자 분량) 두차례에 걸쳐 편집했다. 호흡이 차분해졌고, 심리적인 사운드가 살아났다.

김명민은 TV와 연극의 연기로 톤이 강했다. 그에게는 ‘비우는연기’를 주문했고, 장진영에게는 ‘채우는 연기’를주문했다.

이전에 굳어진 이미지가 없어 감독으로서는 새 그릇을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았다. 흥행과 상관없이 두 배우가 연기자로 거듭난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장르 영화가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겐 비교적 친절하지 못한 영화로 비칠 수도 있지만 무례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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