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붉은 수수밭'과 '마지막 황제'는 20세기 초 비슷한 시대를 산 농촌 여인과 청나라 마지막 황제의 극명하게 다른 삶을 그렸다.'붉은 수수밭'은 누대에 걸쳐 상속한 궁핍과 봉건적 질곡, 외세 침탈에 맞서 운명을 개척하는 여인이 주인공이다.
반면 '마지막 황제'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운명을 맡긴 채 호사와 전락(顚落)의 극단을 산 무력한 제국의 계승자에 조명을 비췄다.
어줍지 않게 영화 평을 하려는 게 아니라, 두 영화의 메시지만 되돌아 보자. 중국인 장이머우 감독의 '붉은 수수밭'은 척박한 토양을 딛고 선 민중을 부각시킨 점에서 좌파 색채가 짙다.
반면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 마지막 황제'는 봉건 질서를 타파한 중국 인민이 공산주의를 택한 것은 잘못이란 인식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영화는 나름대로 중국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그러나 중국의 개혁 개방이 열매 맺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 두 영화가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외부 세계는 여전히 엇갈린 시각으로 중국을 보고 있다. 이는 베이징 올림픽을 둘러싼 논란에서 잘 드러났다.
중국 체제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시각은 베이징 올림픽을 나치 독일의 베를린 올림픽에 비유한다. 인권을 억압하는 중국 공산당이 올림픽을 체제 정당화의 빌미로 삼도록 허용한 잘못이라는 것이다.
올림픽은 중국 지도층이 아닌 인민을 위한 선물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중국이 국제 사회의 인권 감시를 수용하라는 주장도 있다. 공통점은 모두가 중국 인민의 인권과 복지를 앞세우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 체제와 민중을 떼놓는 논리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청조 말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은 청조와 민중의 역량이 결합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계기는 아편 전쟁 등을 거쳐 대륙을 마음껏 침탈하던 서구 열강에게 농민들이 부청멸양(扶淸滅洋)을 외치며 도전한 의화단 운동 이었다.
청조는 이 ‘의화단의 난(亂)’을 뒤에서 지원하고, 열강에 선전포고까지 했다. 서구는 8개국 연합군으로 베이징을 침공해 난을 잔혹하게 진압했다.
그러나 민중의 힘에 경악, 청조를 무력하고 타락한 채 유지하는 것을 민중 견제의 안전판으로 삼았다. 외세에 고삐매인 마지막 황제는 그 상징이다.
마지막 황제를 반역죄로 투옥한 공산혁명 지도자 마오쩌퉁은 1949년 인민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이제 누구도 중국을 능멸하지 못할 것’이라고 외쳤다.
중국 인민이 공산주의에 기운 바탕, 민중을 핍박한 봉건 질서와 외세에 대한 분노와 변혁 열망을 집약한 셈이다.
그는 죽의 장막을 치고 자력 갱생을 꿈꾸다 문화 혁명의 광란을 일으켰으나, 중국 사상 가장 큰 변혁의 초석을 놓은 것은 틀림없다.
마오쩌퉁을 이은 덩사오핑이 20년 전 발진 시킨 개혁과 개방은 중국의 국운과 민중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념을 경계로 시비가 많지만, 오늘 날 중국이 사상 가장 강성하고 인민의 삶이 어느 때보다 풍요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올림픽 유치에 중국인들이 열광하는 것은 지난 20년의 노고로 이룬 결실을 자랑하는 것이자, 한 세기 이상 억눌렸던 민족 자존심의 회복을 자축하는 것이다.
중국의 축복을 서구가 용훼하는 데는 오랜 편견과 위선이 작용한다. 기원전 중앙집권 국가가 들어선 중국의 정치체제를 서구 기준으로 재단할 수는 없다.
개혁 개방이 민중의 이반(離反)을 부추길 것으로 보는 것도 성급하다. 의화단의 난 때 수많은 중국 인민을 참살한 서구 연합군을 영화 ‘북경의 55일’의 영웅 드라마로 그린 서구의 시각을 좇을 시대는 지났다.
이념의 틀을 벗어나 중국의 세기적 변혁 드라마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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