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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브랜단 앤 트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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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브랜단 앤 트루디

입력
2001.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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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처럼 살수 있을까?‘영화 같은 세상’ 을 꿈꾸며 사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가. 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처음부터 여자를 만나 장 뤽 고다르의 ‘네멋대로 해라’ 흉내를 내고, 여자가 돌아서자 마음을 돌리려고 ‘선셋대로’의 주연배우 윌리엄 홀덴의 흉내를 내며 빗속 거리에서 쓰러진다. 여자는 비꼰다. “이번에는또 무슨 영화지? 워터월드? 플러버?타이타닉?”

‘시간만 나면 영화에 빠져 버리는 인간’ 에게 세상의 모든 이치는 영화 속에 있다. 모든 대화가 영화이다.

여자를 보고 “재미있는 얼굴이군, 고향마을 언덕과 오솔길 같군” 이라고 근사하게 말하지만, 그것은 영화 ‘도시의 눈물’을 흉내낸 것이다.

“저건 ‘겁쟁이의 귀환’이군” “양보다는 ‘베이브’가 좋아요” 교사 브랜단(피터맥도날드)는 매사 이런 식이다.

TV에는 늘 헨리 폰다가 나오는 영화가 상영중이고, 영화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상상도, 대화도 하지 못한다. 마지막까지자신을 ‘수색자’의 존 웨인으로 상상하는 영화 같은 인생.

영화는 현실을 왜곡시킨다. 현실을 자각하는 것을 막는다. 영화 같은 세상이 좋다.그러나 영화 같은 세상은 없다.

영화에 중독된 인간이 영화 안에서 모든 세계를 해석해 나가는 모습은 분명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또한 비극적인 현대인의 정신병적 징후를 드러내는 우울한 단면이다. 브랜단은 어쩌면 끝까지 현실을 영화적으로 왜곡하거나 변주하며 살아갈 것이다.

제목(원제 When Brendan Met Trudy)까지 ‘해리가샐리를 만났을 때’를 차용한 로맨틱 코미디 ‘브랜단 앤 트루디’ (감독 키에론 월쉬)는이런 기발한 패러디의 즐거움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것을 얘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브랜단이 만나 사랑에 빠진 여자 트루디(플로라 몽고메리)는 몬테소리교사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다.

그것은 브랜단의 영화속 세계와 현실만큼이나 극과 극이다. 거짓말과 진실 사이의 거리이다. 그것을 인정하고 ‘패니스안젤리쿠스’를 부르며 감옥에 있는 트루디와 재결합하는 순간 브랜단은 현실로 돌아온 것 같지만, 여전히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영화를 떠올리며 자신을 그것과 치환한다. 브랜단의 직업을 묻는 교도소 간수에게 트루디는 말한다. “영화를만들어요.”

‘브랜단 앤 트루디’는 곳곳에 재치가넘친다. 섹스에 관한 발랄하고 유머 넘치는 대사와 행동, 할리우드의 황당하고 노골적인 방식이 아닌 절묘한 패러디, 등장인물들의 능청스런 연기와 해프닝이 끝까지 즐겁다. 영화를 많이 알고, 영화세상에 익숙할수록 더 많이 웃지만, 그 웃음이 곧 비애가 아닐까.21일 개봉.

이대현 기자

mailto: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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