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자이 이쿠로(安齊育郞) 교수는 일본의 이름있는 평화학자이다. 리츠메이칸 대학에 부설된 국제평화박물관의 관장이기도 하다.2년 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 100주년 기념 및 이준 열사 순국 92주년 추모 한민족 제전’에 몇몇 세계적인 평화학자들과 함께 초청돼 주제연설을 했다.
그 날의 연제는 ‘아시아의 평화 – 평화교육과 평화박물관의 발전’이었는데, 그 첫 머리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사죄(謝罪)와 ‘일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의 자책(自責)이 다른 이들의 것과 달랐다.
우선 그의 사죄는 “1592년의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 의한 조선침략 이후 일본이 한반도 사람들에게 자행하였던 숱한 살육행위나 억압사실에 대하여”로, 그 기간과 범위를 400년 전까지 크게 넓혔다는 점이다.
그는 ‘깊은 사죄’라는 표현을 썼다. ‘지식인으로서의 책임’ 부분은 이렇게 그 뒤를 잇는다.
“젊은 층을 포함한 많은 일본인들이 아직까지도 일본이 한반도에서 행해온 여러 가지 만행에 대하여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때로는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가 반복되는 사태를 극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나를 포함한 현대 일본인의 책임이며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나를 비롯한 일본 지식인의 역량부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도륙당한 조선인의 코와 귀를 묻은 교토의 ‘귀무덤’을 말하면서, 한 민족의 가슴에 박힌 치욕스런 상흔이 400년의 세월이 지난들 사라질 것이냐고 물었다. “가해자는 쉬이 잊지만 피해자는 가슴깊이 새길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평화 교육’이다. 잊지 못하는 과거가 있다고 해서 장래의 평화만들기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 그가 대학의 국제평화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주최한 국제학술행사에서 당시 국제평화학회 회장이던 폴 스모커 교수가 어디선가 인용했던 말을 다시 인용했다. “잊을 수 없지만 용서할 수는 있다 (I can’t forget, but I can forgive).”
이 말이야 말로 평화와 평화교육의 불변의 이념이다. 특히 평화박물관은 어디서나 ‘잊지는 않되 화해로 나아가라’가 그 정신으로 담겨있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바로 이 때 ‘국수주의’라는 걸림돌이 등장한다. 다분히 국가주의적인 애국교육의 차원에서만, 그것이 전쟁박물관이든 독립기념관이든, 평화교육시설이 이용되는 것은 엄중히 경계되어야 한다.
지금 일본의 이른바 ‘자유주의 사관’을 표방한 빗나간 세력들에 의한 역사왜곡 교과서 사태도 같은 맥락이다.
있었던 일을 감추고 왜곡하고 빼먹은 ‘역사’를 가르쳐서 ‘애국’하겠다는 발상이 다름아닌 파시즘이고 군국주의이며, 그 부활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은 지금 사상 유례없는 인기도를 누리는 ‘일본 최고의 수퍼 스타’다.
왜곡 교과서 문제에서 보는 그의 아시아 정책은 그러나 ‘무지’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와다 하루키교수 같은 이는 “고이즈미 내각 등장 이후 일본 정치는 실이 끊어진 연과 같은 상태”라고 혹평하지만, 그런 견해는 극히 일부의 지식인들 만의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힘들 때면 가미카제(神風)를 생각한다”는 사람이 고이즈미다. 또 한사람의 스타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될 수만 있다면 히틀러가 되고 싶다”는 위인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일본을 이끈다.
일부 지방에서 벌어지는 우익교과서 채택거부 운동을 가리켜 와다 교수는 “희미한 빛’이라 표현한다.
희망이 있다면, 희미하지만 그것은 지식인의 몫이다. 일본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지식인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것을 묻게 된다.
정달영 칼럼니스트 assisi6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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