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노벨상 수상작 가오싱젠 '영혼의 산'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가오싱젠(高行建ㆍ61)의 ‘영혼의 산’이 번역출간(전2권ㆍ현대문학북스 발행)됐다. 수상 이후 9개월 만이다.
중국 출신으로는 최초의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면서도 정치적 이유에 의한 프랑스 망명자라는 이유로 중국 정부에 의해 비난받았던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이었다.
더구나 세계문학계에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변방의 작가라는 이유로 가오싱젠에 대한 평가는 작품성 자체보다는 작품외적 호기심, 묘한 억측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했던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영혼의 산’은 그런 의구심을 말끔히 씻어준다. 노벨상 발표 직후 프랑스 파리에서 그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 “문학의 본질은인간 조건을 건드리는 것”이며 “나는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서만 자유를 발견한다”고 했던 말이 실감되는 작품이다.
‘영혼의 산’의 원제는‘영산(靈山)’이다. “당신, 당신은 영산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고, 나, 나는 양쯔강을 따라 거닐며 진리를 찾고 있다.” 전체가 81장으로 이루어진장편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영혼의 산’은 이 구절처럼 ‘당신’과 ‘나’가 번갈아 작중인물로 등장한다.
폐암 선고를 받았다가 죽음의 손가락사이를 빠져나온 ‘당신’은 중국 남동부 지역을 여행하다 우연히 기차 동승객으로부터 ‘영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은지도에 없는 산이다. ‘나’는 티베트 고원과 쓰촨 분지 지역을 여행하며 라오껀(老根), 즉 중국의 ‘오래된 뿌리들’을 찾고 있다.
가오싱젠의 서술을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당신’과 ‘나’는 어느새 하나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바로 ‘나’의 또 하나의 분신, 상상 속의 ‘나’이다.
‘당신’이찾는 현실에는 없는 영산, 그것은 중국문화의 시원 혹은 상실된 현대인의 인간조건이기도 하고, 고난의 삶을 살아온 작가 자신의 내면이기도 하다.
‘영혼의 산’은 단순히 소설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여행기이자 신화서, 현실과 환상, 기억과 영혼이 뒤섞인 순례의 기록이다.
가오싱젠은 이처럼 열린글쓰기의 형식에 중국의 신화와 풍습, 민요와 전설, 환영오염에서 문화혁명의 참상에 대한 고발 등을 자유자재하게 서술해 놓았다.
모든 감동적 소설이그러하듯 ‘영혼의 산’을 읽다 보면 지금 이곳을 벗어나 참 나(眞我)를 찾아 떠나야 한다는 절박한 욕망이 샘솟는다. 더구나 가오싱젠의 글은 동양적현실에 바탕해 그 친근함이 바로 우리 고향의 이야기를 읽는듯하다.
가오싱젠은‘1982년 여름~1989년9월, 베이징~파리’라는 시공간의 기록으로 이 작품을 끝맺고 있다.
실제 그는 ‘영혼의 산’을 82년 중국에서 쓰기시작해 천안문사태 직후에 파리에서 완성했다. 1940년 중국 장시(江西)성에서 태어난 그는 베이징 외대에서 불문학을 전공, 39세의 나이에 늦깎이로 소설창작을 시작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학에 도전하는 모더니즘의 성격이 강한 희곡과 소설로 문화혁명을 비판하면서 80년대 중국 문학논쟁의 중심에서며 중국정부의 요시찰 인물이 됐고, 마침내 88년 프랑스로 망명했다.
노벨상 수상 이후 그는 끊임없이 정치적 압제와 소비지상주의, 세계화를 문학의적으로 비판해왔다. ‘영혼의 산’에 이미 그의 이러한 사고가 담겨있다.
“내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삶이 문학의 원천이라고 가르쳤다.
내 잘못은바로 삶에서 멀어지고 삶의 진리에 역행하는 데 있었다. 삶의 진리는 삶의 외적 이미지와는 다르다.
내가 이러한 진리에서 멀어진 것은 삶을 있는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삶의 현상들만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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