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핑클, 베이비 복스 노래가 나오니까 너무 좋아요.” (이서윤ㆍ12ㆍ서울 발산초등 6)^“저는 댄스곡보다 발라드를 좋아하기 때문에 발라드가 비교적 많이 나오는 이 프로그램에 자주 방청 신청을 해요.” (정현진ㆍ22ㆍ고려대 3년)
“가수는 가창력이 생명이 아닌가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나와 기분이 좋습니다.” (김진국ㆍ39ㆍ변호사)
“품격 있는 프로그램에 트로트 가수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나오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박상희ㆍ42ㆍ주부)
“개인적으로 가곡과 오페라를 좋아합니다. 성악가들이 우리 가곡과 외국 오페라를 부르는 무대를 쉽게 접하긴 힘들죠.” (박상조ㆍ54ㆍ회사원)
3일 KBS홀에서 열린 ‘열린 음악회’ 400회 특집 공연(22일 방송)에서 만난 사람들은 연령층은 물론 노래에 대한 취향은 차이가 있지만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세대와 취향이 달라도
KBS 홀 1,800여 석을 꽉 메운 사람들과 난간에 있던 방청객들은 정수라의 ‘환희’ 로 시작돼 모든 출연 가수들이 ‘오늘 같은 밤이면’ 을 합창하며 막을 내린 2시간 동안 열광했다. 공연이 끝났어도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
“내가 기쁠 때 내가 슬플 때 누구나 부르는 노래…” 송대관의 노래가 나올 때나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의 기쁨도 이별의 아픔도…” 태진아가 열창할 때에는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20대 젊은 방청객들도 박수를 치며 따라 부른다.
“노래는 역시 트로트야”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드는 순간, 방정식, 조용수, 김경업 등 6명의 뮤지컬 팀이 뮤지컬 ‘Fame’ 의 주제가를 부르자 20, 30대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춘다.
발라드 가수로 정평이 나 있는 신효범, 폭발적인 무대 매너와 열창으로 관객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인순이, 성악기법으로 가요를 절묘하게 부르는 조영남에게도 반응은 마찬가지. 10대들은 홍경민, 박진영 등이 나오자 가수들의 이름을 연호한다.
KBS 이문태 주간의 말. “ 본격적으로 음악의 크로스 오버를 시도해 성공한 프로그램이 바로 ‘열린 음악회’다.
그동안 클래식과 대중 음악인의 관계는 소원했으나 ‘열린 음악회’ 에서는 대중가수, 성악가, 국악인들이 서로를 격려하며 좋은 무대를 꾸몄다.”
◆수동적 관객에서 적극적 참여자로
‘열린 음악회’ 가 잘 나갈 때 방송학자, 음악가,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모여 ‘열린 음악회가 공연 문화에 미치는 영향’ 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열린 음악회’ 는 문화 소외계층으로 여겨졌던 노동자, 서민을 비롯한 사람들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청중을 겨냥한다.
또 수동적으로 공연 문화를 바라보던 사람들을 적극적 참여 층으로 변모시켰다. 경기 안산 시민 4만 명이 한 번에 참석하는 등 1993년 5월 8일 첫 방송이 나간 이후 400회를 맞는 동안 270만 여 명이 관람하는 기록을 세웠다.
자주 지방을 찾아 대형 야외무대로 공연을 열어 서울 중심의 공연문화를 지방으로 확산한 것도 의미가 있다.
◆공개방송 문화의 주역
‘열린 음악회’ 는 관객을 모아 놓고 공연을 하는 본격적인 공개방송 프로그램의 원조격이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둔 이후 공개방송이 급증했다.
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MBC ‘음악 캠프’ 등 수많은 프로그램이 ‘열린 음악회’의 형식을 따랐다.
그리고 ‘열린 음악회’는 가수들의 가창력을 판단하는 근거가 되었다. 요즘은 노래 잘 부르는 가수보다 외모와 댄스로 승부를 거는 가수들이 인기를 끄는 추세다.
하지만 가수 이은미의 주장처럼 “가수는 노래를 잘 불러야 한다”는 것은 가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열린 음악회’는 립싱크를 거의 허용하지 않는다. 3년 전부터 댄스 가수들을 출연시키면서 일부 립싱크를 용인했지만 거의 라이브로 진행한다.
400회 특집 방송에서도 30명 출연가수 중 유일하게 립싱크를 한 가수는 베이비 복스 한 팀이었다. 그래서 가수들은 ‘열린 음악회’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가창력을 인정받는다.
◆더 열린 무대로
‘열린 음악회’는 요즘 예전의 인기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고정적인 레퍼터리와 출연자들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의 실험이나 출연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주철환 이화여대 교수(언론영상홍보학부)는 “우리는 세대와 지역에 따라 그리고 학력에 따라 분열될대로 분열됐다.
하지만 ‘열린 음악회’는 아직도 학력이나, 취향이나, 세대간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이다”고 말했다. ‘열린 음악회’ 제작진이 고민할 때다.
배국남 기자 knbae@hk.co.kr
■왜 공개방송에 열광하나-동류의식·세대간 연대감 느껴
손을 잡고 다정히 방송사 스튜디오로 향하는 20대 연인들이 가는 곳은 십중팔구는KBS ‘이소라의 프로포즈’ 이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방송이 되기 전부터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쓴 플래카드를 들고 소리를 질러대는 곳은MBC ‘생방송 음악캠프’ , SBS ‘생방송인기가요’ KBS ‘뮤직뱅크’ 이다. 방송사 시설이 신기한 듯 연신 눈을 크게 뜬 중ㆍ노년층이 발걸음을 옮기는 곳은KBS ‘가요무대’ 이다.
KBS ‘열린 음악회’ 를 기점으로 활성화한 공개 방송 형식의 공연문화는 이처럼 철저히 세대가 나뉘어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람들은 왜 공개방송에 열광할까? 바로 동류의식과 세대간 연대감을 느낄 수 있기때문이다. 시대적인, 정치ㆍ사회ㆍ경제적인 성장 환경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편하고 쉽게 동화할 수 있다.
거기에는 아련한 추억이 있고, 가슴아픈 사랑과 이별이 있으며, 동시대를 성장한 고통과 슬픔, 환희와 보람이 배경처럼 어려 있다.
노래라는 문화적 매개체를 통해 이들은 한 마음이되고 과거를 카타르시스하는 것이다.
공개방송은 또 열광을 전염시키는 특징이 있다. 혼자 하기는 쑥스러워도 함께 있으면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출 수도 있다.
적극적인 문화 수용태도를 보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이 바로 공개방송이나 라이브 콘서트장 같은 곳이다.
따라서 공개방송은 출연 가수나 방청 분위기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10대들의해방구가 돼 버린 ‘생방송 음악캠프’ 등 가요 순위 프로그램 녹화장에는 핑클, SES, 박진영 등 젊은 인기 가수들이 출연한다.
대부분 출연자들은 라이브가 아닌 립싱크로 노래를 부르며 10대 방청객들은 자신들이좋아하는 가수들이 나오면 연호하지만 라이벌 가수가 나오면 야유를 보내 제작진이 가장 애를 먹는다.
젊은 연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이트 코스로 부상한 ‘이소라의 프로포즈’ 는 립싱크를 불허하는 라이브 가수들의 전용 무대이다.
다양한 장르의 대중가요 가수들이 나오고 이 무대에 서면 가창력을 인정받는다는인식이 출연자나 시청자들 사이에 심어져 있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하지만 10대들의 아우성은 들리지 않는다.
대중가요의 소외층으로 여겨지는 30~40대 중년층이 찾는 곳은 통기타와 청바지문화로 대변되는 70~80년대 노래가 주로 불리워지는 SBS ‘메모리스’ 이다.
남궁옥분, 하남석 등 이제는 ‘미사리 가수’ 로 분류되는 가수들이 얼굴을 내비치는 곳이다. 방청객은 박수를 간간히 칠 뿐 조용한 분위기다.
이런 때문인지 KBS가 지난해와 올해 각각 이 연령층을 겨냥한 ‘낭만에 대하여’와 ‘초대’ 를 신설했다가 얼마가지 않아 폐지했다.
50대 이상 장노년층에게는 ‘가요무대’가단연 인기다. 흘러간 노래를 들을 수 있고 트로트 가수들이 대거 참여하는 ‘가요무대’ 는 그동안 대중 문화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한 이 연령층에게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노년층의 거의 유일한 방송 문화공간 구실을하고 있다.
KBS 박해선PD는 “사람들은 10~20대 때 좋아했던 노래를 평생 가슴에 간직하며 살기 때문에 공개방송은 연령대별로 출연가수나 노래를 선정할 수밖에 없다.
외국에 비해 문화 공간이 적은 현실에서 공개방송은 적잖이 많은 사람들에게 대중가요 문화 혜택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배국남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