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재해 자동음성통보시스템' 유명무실“자동음성통보요? 그런 게 있었나요? 그렇다면 사람 목숨만은 구할 수 있었을텐데….”
서울시가 수해나 폭설, 지진 등 각종 재난에 대비해구축한 ‘재해상황 자동 음성통보시스템’이 이번 수해에는 거의 작동이 안돼 아까운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난이 잇따르고 있다. 수해피해를 당한 시민들은그런 시스템이 있는지 조차 몰랐고, 가옥이 물에 잠기고 산사태가 나는 급박한 상황에서 첨단 시스템은 끝까지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시스템이운영된 지역에도 극히 일부 가정에만 위험신호가 가는 시늉에 그쳐 사실상 ‘먹통’이나 다름 없었다.
재해상황 자동 음성통보시스템은 각종 재해에 의한 피해가 우려될 경우 구청에서일반 가정으로 직접 전화를 걸어 주민에게 재해사실과 대피 여부 등을 알리는 일종의 ‘핫라인(HOT LINE) 제도’. 구청 당직자가 이 시스템의버튼을 한번 누르면 “여기는 ××구청입니다. 폭우로 인해 산사태가우려되니 빨리 대피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등의 미리 녹음된 내용이 16개 회선씩 가정집 전화나 휴대폰으로 전달된다. 버튼을 30여번 누르면5,000여 가구에 대피경보가 내려지는 것이다.
시가 이 시스템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 시는 자치구별로4,000만원씩 총 4억4,000만원을 들여 지난달까지 중랑천과 안양천 주변 등 11개 자치구에 시스템 설치를 완료했다. 그리고 “첨단 경보장치가설치됐으므로 게릴라성 집중호우에도 인명사고는 막을 수 있다”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집중호우가 쏟아진 15일 새벽. 동대문과 중랑ㆍ양천ㆍ영등포구 등에서 저지대의수천 가구가 침수되고 차량이 물길에 쓸려 뒤엎어지는 상황에서도 이 시스템은 전혀 가동되지 않았다. 동대문구와 성동ㆍ구로구 등은 아예 가동조차 하지않았고 중랑구는 “담당 직원이 외근중이라 이용방법을 몰랐다”고 변명했다. 양천ㆍ영등포구는 “각 동사무소에 연락했다”면서 “시스템 사용을 생각지도않았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구청이 이 시스템을 홍보에만 이용했을 뿐 사실상 장식품으로 모셔두었던 것이다.
시스템을 가동한 성북ㆍ은평구 등 4개 구청의 경우 긴급 통보가 필요한 침수우려지역은 무시하고 일부 통ㆍ반장 등에게 가동하는 등 시늉에 그쳤다.
수재민 박모(35ㆍ회사원ㆍ동대문구 휘경동)씨는 “자동으로 위험을 알려주는 전화가있는지 몰랐다”면서 “물이 집안으로 차오르는데도 구청이나 동사무소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어 주민이 이웃을 깨워 대피시켰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갑작스런 상황에 담당 직원이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것 같다”는 변명에만 급급하고 있다. 비싼 예산을 들여 마련한 첨단 설비가 장식품으로 전락시켜 결과적으로 관재(官災)를 빚어낸 책임은 서울시청이최우선적으로 져야 할 것이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