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소설' 자칭…동서고금 정신 종회무진‘알도와 떠도는 사원’(김용규 지음ㆍ이론과실천 발행)은 소설의 형태를 띤 철학 교과서다. 지식을 소설에 담은 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을읽으며 지난 1990년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를 떠올리는 것은자연스럽다.
그런데 ‘소피의 세계’가 ‘철학 소설’이라고불렸던 데 비해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지식 소설’을 자칭하고 있다.
작가나 출판사가 ‘철학’이라는말 대신에 ‘지식’을 고집한 것은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지식이 좁은 의미의 철학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듯하다.
실제로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고대 신화에서 수학이나 유전공학, 컴퓨터공학에 이르기까지 딱히 철학이라고 할 수 없는 지식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지식 역시 이 소설의 스토리 속에서세계의 해석에 이바지하고 있으므로 이 소설을 관습대로 ‘철학 소설’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소피의 세계’가 철학사에 대한통시적 탐사라면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시간축에서 벗어나 경험론과 합리론, 현대 인식론의급진적 구성주의, 사회 진화론, 감성과 오성, 내포와 외연, 갖가지 파라독스 등 정신사의 이런저런 개념들 사이를 자유자재로 오간다.
‘소피의세계’의 소피가 소설의 도입부에서 철학에 무지한 14세의 노르웨이 소녀라면 ‘알도와떠도는 사원’의 알도는 이미 소설의 시작부터 철학에 대해 꽤 깊고 넓은 지식을 지닌 15세의 독일 소년이다.
그는 방학을 맞아 인도에서 과학자로 일하는 아버지를 방문하고, 거기서 온갖 환상적 모험을 겪는다.
‘알도와 떠도는 사원’은 두 개의 줄기를지닌 이야기다. 하나는 영생의 비밀이 적혀 있다는 ‘나칼의 서(書)’를찾기 위한 열정의 얘기다.
또 하나는 카스트 제도의 네 계급에 적합한 이상적 유전자 지도를 얻어내 인도에 카스트제도를고착시키려는 ‘프로젝트 이카로스’를 둘러싼 음모의 얘기다.
앞쪽은 신비주의라는 미망이고뒤쪽은 극단적 이성주의라는 광기다. 알도는 그 둘 다에 맞서 싸운다.
소설 속에서 ‘떠도는 사원’이란나칼의 서를 간직한 구체적 공간이기도 하고, 사람이면 누구나 추구해야 할 진선미, 자유, 평등, 사랑, 정의 같은보편적 가치의 은유이기도 하다.
한국인이 쓴 소설의 주인공이 하필이면 왜 독일 소년이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구성이 다소 산만하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술술 읽힌다. 특히 뒤로 갈수록.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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