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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가는길 / 월드컵과 나 - 90년 감독 이회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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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가는길 / 월드컵과 나 - 90년 감독 이회택

입력
2001.07.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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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이탈리아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에서 대표팀이 조1위(3승2무)로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었을 때 나는 감독으로서 그 누구보다 한국축구의 높아진 위상을 느낄수 있었다. 최종예선이 끝난 직후 아시아 최초로 2회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대업을 이루자 ‘한국축구는 아시아의 수준을 넘어섰다’ 는 평가를받는 등 월드컵 16강의 꿈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 했다.그러나 90년 월드컵은 결국 내게아시아축구와 세계축구의 높은 격차만을 실감나게 했다. 이탈리아로 떠나기 전 나는 내심 본선 8강을 목표로 생각하고 있었지만(목표란 항상 높을수록좋은 것 아닌가) 세계축구의 흐름은 이미 아시아 축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조직력을 바탕으로 한 강한 압박축구를 기초로하고 있었다. 벨기에(0_2패), 스페인(1_3패), 우루과이(0_1패)를 상대로 3전 전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거뒀던 당시 월드컵을 회상한다는것이 어쩌면 고문과도 같은 일이다.

당시를 돌이켜 볼 때 가장 아쉬웠던점은 본선에 대비한 대표팀의 준비 부족이다. 대회 5일전에야 이탈리아에 도착한 선수들이 어떻게 현지시차적응을 하고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길 기대하겠는가.당시 이탈리아에 일주일 정도 더 빨리 갔더라면 좀 더 나은 성적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우루과이와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심판의 애매한 판정으로로스타임에 1골을 허용해 졌지만 경기내용 만큼은 만족스러웠다.

월드컵의 부진한 성적으로 대표팀 감독에서물러날 때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착잡했다. 그러나 차범근, 허정무 등 후배 대표팀 감독들 역시 나와 똑같은 전철을 밟아야 하는 한국축구의현실에 더욱 가슴 아프다. 공이 둥글어 축구 결과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축구의 수준이란 명백한 것이다. 기술이 뒤지는 한국축구의 한계를 겸허히인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야 월드컵 본선에 대비한 치밀한 준비를 이룰 수 있다. 개최국의 이점만을 믿고 본선준비에 소홀히 한다면 90년 월드컵의결과와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약력

1966년 청소년대표로 발탁된 후 77년까지12년동안 국가대표를 지내며 한국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던 이회택(55)씨는 87~92년 프로축구 포항제철 감독 재직시절 이탈리아월드컵의 사령탑을 지냈다. 이후 한양대 축구부장(93~98년)을거쳐 현재 전남 드래곤즈 감독직을 맡고있다.

■90년 이탈리아 대회

86멕시코월드컵 우승국 아르헨티나가개막전서 아프리카의 카메룬에 0_1로 패하는 등 90년 이탈리아월드컵대회는 초반부터 이변의 조짐을 보였다. ‘검은 돌풍의 핵’ 카메룬은 16강전서콜롬비아마저 2_1로 제압, 아프리카대륙에서 최초로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월드컵 2회 연속진출로 관심을 모으던 한국은 무기력하게3전전패를 기록, 대조를 이뤘다. 한국은 스페인전에서 기록한 황보관의 유일한 골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가장 멋진 골 베스트5’에 선정되는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90년 베를린 장벽을 허물며 통일을이룬 독일은 아르헨티나를 1_0으로 꺾고 멕시코월드컵 결승에서의 패배를 설욕하며 우승을 차지, 두배의 기쁨을 누렸다. 한편 압박축구가 대유행을이뤘던 이 대회서는 경기당 득점이 2.2골에 그쳐 역대 월드컵 최소골을 기록, ‘가장 재미없는 월드컵’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이준택 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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