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몸을 던져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무용수에게 철가루를 뿌리면 어떻게될까? 물리학 이론으로 보자면 인체가 하나의 자석이 되어 머리(N극)에서 곡선을 그리며 뻗어나간 철가루가 발부분(S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회전(spin)하는 물체는 자기성(磁氣性)을 띠기 때문이다. 자전 하는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듯 머리카락 굵기의 10만 분의 1 정도인 나노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회전하는 원자와 전자들, 이들이 형성하는 자기의세계가 반도체를 대체할 자기메모리와 차세대 정보저장 영역으로 각광받으며 응용물리학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바로 NT(나노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가장먼저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의 탄생이다.
나노세계 자성체들을 제어하라?
1985년 미 듀퐁사의카시아 그룹은 두께가 8옹스트롬(1옹스트롬= 10-8㎝)인 코발트ㆍ팔라듐 박막 원자들의 회전방향을 밝혀냈다. 이는 원자들의 스핀방향을제어할 수 있다는 스핀엔지니어링 시대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었다.
같은 방향으로 회전하는원자들이 모이면 N극 혹은 S극의 성질을 띠는 작은 자기장이 형성된다. 이 자기장을 제어해서 N극, S극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디지털연산 기준인 이진법으로 이루어진 정보저장매체가 되는 것이다.
반도체는 전기량의 변화를 통해 제어한다. 그렇다면 나노 자성체들을 제어하는 데는 무엇이 쓰일까? 빛(光)이다.
엄밀히 말하면 빛의 세기이다. 빛의 세기를 조절해온도 등에 민감한 나노 자성체를 제어하는 것이다.
저장된 정보를 불러오는 데는 빛을 구성하는 두 가지 줄기 중 하나인 편광(偏光)이 쓰인다. 나노자성체는 편광이 비췄을 때 가지고 있던 정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빛에 의해 제어되는나노 자성체 물질을 광자기(光磁氣)라고 부르는데, 광자기는 스핀트로닉스 분야의 최대 연구과제가 되었다.
광활한 저장매체를 만들어내는 이 연구분야에 이미 IBM, 필립스, 소니 등 세계적인 기업의 연구소들이 뛰어 들었다.
저장공간과 컴퓨터 속도의 혁명
컴퓨터가 널리 보급됐다고는하지만 컴퓨터 저장정보는 전세계 종이문서 정보량의 10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KAIST 스핀정보물질연구단 김무겸 연구원은 “광자기를 제어해서 저장매체로 쓰면 현재 기가 급인 컴퓨터 저장공간을 기가의 1,000배로 엄지손톱만한 공간에 신문 840만 페이지를 담을 수 있는 테라 급까지 확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후지쯔사에서개발한 3.5인치 광자기디스크는 같은 크기의 플로피 디스크 저장용량의 1,000배에 해당하는 1.3GB(기가바이트)의 저장용량을 가지고 있다.
정보 저장의 용도외에 컴퓨터의 정보처리 속도를 좌우하는 메모리 기능의 향상에도 나노 자성체들이 사용될 수 있다.
나노 자성체를 이용한 자기메모리(MRAM)는 반도체메모리보다 구조상 작고 빠를 뿐 아니라 전원이 꺼진 상태에서도 정보가 유실되지 않는다.
자기메모리 개발도이미 산업화 단계에 접어 들었다. IBM은 현재 가장 빠른 반도체 메모리보다 작동시간이 6배 빠른 자기메모리를 개발했다.
KAIST 물리학과 최성복 교수는 “스핀트로닉스는 NT분야 연구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20세기가 반도체의 시대였다면21세기는 스핀트로닉스의 시대”라고 말했다.
■스핀은 회전이 아니다?
스핀트로닉스에서 스핀(spin)은우리말로 당연히 ‘회전’이다. 그러나 물리학계에서는 이렇게 단정짓는 것을 꺼린다.
모든 회전하는 물질은 자기성을 갖는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그 역즉, ‘모든 자기성을 가진 물질은 회전하고 있다’ 는 명제도 성립된다고단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원자 등 나노 자성체들의회전 모습을 농구공이 돌아가는 것처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자성을 띠는 것이 확인됐고 이를 역으로 추적해 ‘회전하고 있을 것’이라고추측하는 것 뿐이다.
회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면 또 하나 물리학의 개가인 셈이다.
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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