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운동장에 보이는 사람의 형체가 점차 흐릿해진다. 앞 사람 뒤를 따라 뛰고 또 뛴다. 숨이 가쁘다.그래도 뛴다.너무 숨이 차면 걸어간다. 빠른 속도로 부지런히 걸으면 뛰는 것 못지 않다. 다섯 바퀴, 여섯 바퀴. 땀이 흐른다. “열 바퀴가 차면 그만 돌아야지” 하다가 막상 열 바퀴를 돌고도 힘이 남으면 더 뛴다.
교문 위에 켜놓은 등불이 한껏 밝아지면서 집으로 돌아갈 때를 알려준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며 집에 가는 광경이 평화스럽다.
■지금 전국에서 벌어지는 ‘밤달려’의 모습이다. ‘밤달려’는 밤에 달리면서 운동한다는 말이다.
시민에게 개방한 초등학교 운동장을 비롯해 강변로와 산책길, 그리고 공원과 대학교정 등은 매일같이 ‘밤달려’의 현장이 된다.
낮에 운동할 틈이 없는 직장인이 밤 이슥하도록 뛰기도 하지만, 주부들이 모여 신나게 운동하는 것이 ‘밤달려’의 진면목이다.
■‘아달려’를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아달려’는 아침 달리기를 가리키는 말이다. 새벽 일찍 일어나 뛰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지난밤의 열기가 사라져서 시원해진 바람을 맞으며 공원 속을 달리면 힘이 솟는 것을 느낀다.
‘밤달려’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같이 뛰는 재미가 있지만, 가족이 서로 힘내도록 북돋우며 뛰는 ‘아달려’는 싱그럽다.
주말이 아니면 밥순이 책임 때문에 주부들은 ‘아달려’ 동참이 어렵다. 아이들도 가끔 합류하지만 늦잠이 잦은 때라서 대개는 어른들만 달린다.
■대도시엔 뛸 장소가 마땅찮다. 아무리 산책로를 만들고 학교 운동장을 열어 놓아도 쏟아지는 운동 인구에 비해 시설이 늘 부족하다.
선거로 당선된 시장님 구청장님이 여기저기 뛸만한 장소를 만들어 놓아도 그렇다. 그러면 길거리를 뛴다.
주택 부근의 작은 야산도 ‘아달려’ ‘밤달려’의 무대가 된다. 올라갈 땐 등산이지만 내려올 땐 달리기 노선으로 제격이다.
운동장을 뛰건 길거리를 뛰건 ‘아달려’ ‘밤달려’ 인생은 즐거운 인생이다.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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