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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황장엽 씨를 미국에 안 보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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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황장엽 씨를 미국에 안 보내면

입력
2001.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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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가 출범할 때 햇빛정책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에서 지금도 변함없이 지지하는사람이 얼마나 될까.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햇빛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크게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확고한 신념으로 햇빛정책을 지지하던지식인 그룹에서도 점차 지지를 유보하거나 침묵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기대했던 만큼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6월15일 평양에서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공동선언을 발표하던 감격, 곧 이어 쏟아져 나온 온갖 무지개 빛 전망이 대부분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중요한 이유다.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막대한 적자로 주저앉게 된 것도 대북지원이 ‘밑 빠진 독에 물붓기’ 라는 인식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의연하지 못한 자세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남북관계가 쾌속정을 타고 달릴 수 없다는 것은 지난 50년 역사가 말해주는 상식이다.

정부는 북한이 매우 복잡한 상대라는 수십 년 경험을 외면하고,이 정부와는 특별히 잘 될 것이라는 자만과 낙관으로 일관했다.

역대 정권이 한결같이 남북정상 회담에 매달렸지만 그것을 이룬 것은 우리뿐이다, 북한을잘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한평생 남북관계를 연구해 온 김대중 대통령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점을 누구보다 북한이 잘 알고 있다는 의식이 앞선것이 문제였다. 국민의 무지개 빛 환상을 깨우쳐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흥분했다.

온갖 추측 속에서 베일에 가려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서 국제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소탈하고 유머감각이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가 과거와 다른사람이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에 관해서 모르고 있었던 한 면을 알게 된 것에 불과했다. 그가 김대중 대통령과 역사의 한 장을 함께 만들었다는 감동으로 순안 공항에서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한들 그는 과거의 그 사람인 것이다.

정부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서도 특별한 기대를 품었고, 그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남북관계가 예상했던 속도로 진전되지 않자 정부는 조급증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을 달래려고 선심을 쓰고, 비위를 건드릴까봐 조심조심하는 정부의 자세는 당연히 국민의 눈에 거슬렸다.

북한에 대한 배려가 앞서다 보니 선후가 뒤바뀌고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그 중 하나가 황장엽씨를 미국에 보내지 않으려는 정부의 발상이다.

북한에 대한 부시정부의 강경책이 걱정스러운 판에 황장엽씨까지 미국에 가서 강경파들에게 이용당할 것이라는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이 황장엽씨 방미를 반대한다는 점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황장엽씨는 신변보호를 받아야 하는 특수신분인데 미국에서 의원 몇 명이 초청했다고 해서 반드시 보낼 의무가 있느냐는 주장에도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 해도 황장엽씨를 미국에 안 보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의 심기를 걱정하기 전에 그 엄연한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황장엽씨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그는 북한체제를 못 견뎌서 남한으로 망명한 사람이다.

남한이 그의 ‘여행의 자유’를 제한하고 ‘억류’한다면 그야말로 우리의 ‘정체성’을 의심 받게 된다. 미국에 대해서도 여러 의견이 있을수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던 혈맹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황장엽씨가 미국에 가서 할 말을 우리는 이미 여러 번 들어서 알고 있다. 그것은 새로운 말도 아니고, 놀라운 내용도 아니다.

북한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걱정에 앞서 우리가 민주국가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남북관계에 대한 과욕을 버리고 노심초사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햇빛정책 이외에 대안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이 정부의 ‘조급한햇빛정책’을 계속 지지하고 싶지 않다. 나 같은 사람들이 계속 햇빛론자일수 있게 해야 한다.

발행인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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