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중엽 비잔틴의 역사가 프로코피우스는 ‘전인류를 거의 멸종시킬 뻔 했던 전염병’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첫날에는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림프선 종창이 생겼다. 사흘이 지나면 열이 폭발적으로 오르면서 환각증세에 시달렸다.
닷새째가 되자 감염자의 절반 이상이 죽었다. 콘스탄티노플을 강타한 전염병은 ‘어떤 한 역병(a plague)’이 아닌 ‘바로 그 역병(the plague)’이었고, 그것은 나중에 ‘흑사병(Black Death)’이라고 불리게 된 ‘페스트(pest)’였다.
미국의과학저술가인 아노 카렌은 ‘전염병의 문화사’에서 인간을 지배해 온 질병의 역사를 기술했다. 카렌이 묘사한 것은 인류의 역사를뒤바꿔 놓은 전염병이었다.
홍역과 두창은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끝냈고 신대륙의 원주민을 몰살시켰으며, 발진티푸스는 러시아 정벌에 나선 나폴레옹의50만 대군을 전멸시켰다.인플루엔자는 전세계 2,000만 명의 대학살을 이끌었다.
작은 쥐가옮긴 ‘바로 그 역병’ 페스트도 마찬가지였다. 서방 제국을 건설하려던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의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농토는황폐화했으며 교역은 중단됐다. 전염병이 끝났을 때 유럽 인구는 절반으로 줄었다.
700여년뒤 ‘타락에 대한 저주’로불리는 나병이 결핵과 손을 잡고 중세 유럽을 휩쓸었다. 가까운 친척 사이인 두 병원균은 묘하게도 서로에 대한 면역반응을 갖고 있었다.
결핵이 줄어들자 나병이 증가했고, 나병이 사라지자 결핵이 돌아오는 식이었다. 결핵균은 햇볕과 신선한 공기가 모자란 도시의빈민을 희생자로 삼았으며, 중세 후기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세력을 넓혀 나갔다.
인구와 도시의 밀집도가 증가하고 십자군에 의해 유럽과 중동이 접촉하면서 르네상스의 개막이 촉발됐다.
인류 역사에 최악의 재앙이 된 두번째 흑사병이 검은 날갯짓을 치기 시작한 순간이기도 했다. 페스트균을 품은 인도산검은 왕쥐가 십자군의 배를 타고 유럽에 들어가 것이다.
8세기전 프로코피우스가 기술한 증상들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서도 반복된다. 이 책은 흑사병을 피해 시골로 은둔한 피렌체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모음이다.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 림프선종이 나타나서 사과만큼 커졌고, 검은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면서 죽어갔다.
교황은 역병이라는 천벌을내린 신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고행자들이 집회를 하도록 이끌었지만, 그들이 폭도로 변하자 화형으로 억압했다.
부적절한 대응이었다. 사람들의 믿음은약해졌으며, 정치 지도자들이 권위를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대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에이즈가 발발하게된 데는 무분별한 벌목도 한몫 했다. 숲의 개간이 생태계의 훼손으로 이어지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원숭이와 접촉한탓이다.
지난해말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V) 보균자는 3,6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망자 수는 꾸준히 감염자 수를 따라잡을 것이다.
왜냐하면 에이즈는 거의 대부분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탄생한 태초부터 인간은 병균과 함께 해 왔지만, 전염병과의 전투는 언제나 패배로 끝났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에이즈 환자의 수명을 연장하고 고통을 덜어주는대책은 별로 수립된 것이 없으며, 안전하고 효율적인 백신의 등장은 아직도 요원하다”고카렌은 우울하게 말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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