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로 희생된 망자들의 혼과 그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알렉산데르 크바스니에브스키 폴란드 대통령은 10일 나치 독일 치하인 1941년 7월 10일 폴란드 북동부 예드바브네에서 일어난 유대인 집단학살 사건에 대해 공식 사죄했다.
그는 이날 학살 현장에서 생존자와 희생자 가족 등 3,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진 60주년 추모행사에 참석, “한 인간이자 시민으로서, 또한 대통령으로서 나의 이름과 이 범죄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폴란드인들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최대 1,600여명의 유대인이 헛간에 갇혀 산 채로 불태워진 이 사건은 당시 마을을 점령한 나치 독일군의 소행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유대인 역사학자 얀 토마츠 그로스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펴낸 ‘이웃들’(The Neighbors)이라는 책에서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학살이 이 마을의 폴란드 주민들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주장,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폴란드 정부는 현재 진상조사를 진행 중이며 연말 보고서를 낼 예정이나 대통령이 TV로 생중계된 추모식에서 사죄함으로써 폴란드 주민이 학살에 가담했다는 점을 공식 인정했다.
그러나 대다수 폴란드 국민은 여전히 학살이 나치의 지시로 이뤄졌고 따라서 폴란드인이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다. 요제프 글렘프 추기경은 “유대인들도 구 소련 점령 시절 소련에 협력한 데 대해 폴란드인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크바스니에브스키 대통령도 “학살은 나치가 부추겼고, 나치의 승인하에 이뤄졌다”고 말해 손에 피를 묻힌 것은 폴란드인이지만 궁극적 책임은 나치에 있다는 ‘소신’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이 때문에 유대계 지도자들은 ‘학살의 책임자가 누구냐’는 핵심은 피한 채 ‘용서를 구한다’는 말만 되풀이한 크바스니에브스키 대통령의 사죄 발언에 불만을 터뜨렸다.
한때 전 국민의 20%이상이 유대인이었던 폴란드가 나치와 소련에 번갈아 지배당하는 동안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폴란드인과 유대인간의 화해는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