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도시들은 수백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서울은 해방이후 짧은 시간동안 옛 성곽이나 궁궐 등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지난해 7월 ‘잘 나가던’ 서울시청의 간부직을 박차고 가족과 함께 훌쩍 세계일주 배낭여행을 떠났던 이 성(李 星ㆍ45) 전 서울시 시정개혁단장이 11일 돌아왔다.
67㎏이던 체중이 51㎏으로 줄어들었지만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엔 40여개국의 200여개 도시에 달하는 대장정(大長正)을 무사히 마쳤다는 만족감이 배어 있었다.
그가 전세금 9,000만원을 털어 아내와 두 아들, 처 조카와 함께 1년전 배낭여행을 떠난 것은 단지 쉬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머리 속을 완전히 비운 채 전세계를 닥치는 대로 몸으로 느껴보자는 게 목적. 그렇게 떠난 여행이지만 그가 바라본 세계는 역시 대한민국 공무원의 눈을 통해 다가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서울시정에 반영할지 고민 중이다.
그가 배낭여행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무조건 걸어라’ 는 것이다. 골목 구석구석을 제대로 돌아보라는 충고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은 “힘들다”고 불만이 대단했다.
인근 시장에서 사온 계란과 양파, 감자로 만든 간단한 음식이 메뉴의 전부였지만 아내에겐 그마저도 고역이었다.
그렇게 힘들어 하던 아이들도 여행을 끝낸 지금 공부는 물론,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해 흐뭇하기만 하다.
홍콩으로 출발해 중국서 한달간 대륙횡단, 인도에서 열흘, 아프리카 유럽 등등 세계 5대륙을 돌며 겪은 에피소드는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하루종일 걸어 다음 도시에 도착하면 온몸이 파김치가 됐고,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여권이 낡아 싱가포르에서는 위조여권이라는 의심을 받아 말레이시아로 추방되기도 했다.
또 불가리아와 아르헨티나에서는 예상치 못한 혹독한 추위에 혼이 났고, 멕시코 국경을 넘을 땐 출입국관리소 직원이 가족 중 이 전 단장만 불러 경찰에 넘기려 했던 위기도 겪었다.
알고 보니 한국인 수배자 중 이름이 비슷한 이 선(LeeSun)으로 오인한 것이었다.
그가 돌아 본세계에 투시해본 한국인은 이런 모습이다. “아프리카와 남미 등 못사는 나라를 거치면서 그들이 우리보다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우리가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어요.
그들이 우리보다 결코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우리는 30대 중반 이후 자신도 모르게 일중독에 빠져 인생을 살아가잖아요.”
박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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