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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음모론을 말하기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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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음모론을 말하기전에

입력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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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피니언면에는 화요일마다‘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 실린다. 명사들이 감동과 후회로 남아있는 인생의한 순간을 이야기하는 난이다.6월 5일자에는 판소리꾼 임진택씨가 군사독재정부가 대학생들을 회유하기 위해 마련한 ‘국풍81’이라는 행사의 기획을 거부함으로써 방송 PD를 그만두고 쫓겨다녀야 했던 시절을 들려주었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1981년 봄, 여의도광장에서 ‘국풍 81’이라는 관제 문화행사가 열린 적이 있다.

외관상 행사의 주최자는 KBS였으나 막후에는 당시 청와대 실세 비서관이던 허문도씨가 있었다. 나는 TBC 프로듀서로 근무하다 군부정권의 방송국 통폐합조치로 80년말 갑자기 KBS로 이적,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허씨는 당시 대통령 비서실 정무1비서관으로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도 주도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면서 언론의 생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을 언론탄압에 써먹은 대표적 인물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징글징글했던 80년대 기억이었다. 정부 비판은 입다물어야 했고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보도는 한 줄짜리도 겨우나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낯뜨거운 그 때를 돌이켜주는 이 글은 그런데 허씨를 ‘허모씨’라고 표기하고 있었다. 판소리다운 문체이리라.

그러나 81년이면 벌써 20년전이다. 과거를 잊은, 혹은 모르는 독자들도 있다. 그래서 필자와 통화를 하고 ‘허문도’ 석자를 집어넣었다. “이제 나쁜 놈은 나쁜 놈이라고 확실히 밝히자”면서.

그런데 그 시대를 함께 넘어온 조선일보 주필 김대중씨가 언론사의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그 80년대보다 지금이 언론인으로서 더 힘들다고 했다.

이문열씨를 비롯한 여러 ‘지식인’들은 중앙 동아 조선의 지면을 빌어 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다고 했다.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를 언론탄압이라고 규정하는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국세청의 발표를 보니 언론사들이 탈세를 한 것은 알겠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그 정도 먼지 안 나는 곳이 어디 있나. 그런데도 굳이 신문사만 터는 것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음모 아니겠는가.’

음모일지도 모른다. 저의가 있을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음모는 시각에 따라 달리 보이지만(주관) 사실은 누구에게나 사실인 것이다(객관).

양식이 있다면 이것을 혼동해서도 혼동시켜서도 안 된다. 어떤 이들에게 80년대는 지금보다 좋은 시절이었지만(주관적으로) 광주에서 수백명이 목숨을잃었으며 언론통폐합과 언론인 강제해직, 보도지침은 실재했다.(객관적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위 속에 음모가 숨어있지 않나 살피는 것은 지식인다운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사실에는 눈 감고 음모에만 주목하게 하는 음모론은 그자체가 사람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음모이다.

물론 이번 탈세분에는 세무관리능력의 부족이나 신문경영의 관점 차이에서 생기는 부분이 혼재돼 있다.

그렇더라도 누군가 탈세한 것을 눈감아주면 그 부족분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대신 물어야 한다.

그 한 사람 가운데는 찢어지게 가난한 이도 포함된다. 서울대 경제학과 이준구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언론자유를 말하는 것은 엘리트층의 문제이지만 조세정의는 기층민의문제”라고 했다. 누구라서 말장난으로 진실을 가리려고 하는가.

서화숙 여론독자부 차장 hssuh@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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