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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에라스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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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속으로] 에라스무스

입력
2001.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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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6년 7월12일 네덜란드의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바젤에서 죽었다. 향년67세. 인문주의자란 르네상스 시대에 고대그리스ㆍ로마의 언어와 학문을 연구하고 고대 문헌들을 새로 편찬하던 사람들을 뜻한다.사생아로 태어난 에라스무스는 수도원에 맡겨졌는데, 그는 거기서라틴어 뭉치에 파묻혀 살면서 10대 후반에 이미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 되었다. 또 스물 넘어서는 고대 그리스어를 깊이 공부해 그 시대에 이미 널널한휴지가 돼가고 있던 그리스 고전들을 대량으로 편집했다.

당대의 어린이들에게 고전 언어를 가르치기 위해 집필한 그리스어ㆍ라틴어 격언집 ‘아다지아’가유명하다.

에라스무스의 대표작은‘우신예찬’(1511)이다. 1509년 가을 절친한 벗 토마스 모어의 런던 집에 머물며 일주일만에 썼다는 이 책은 어리석음의 여신 모리아가 이세상이 얼마나 많은 어리석음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낱낱이 들어보이면서 자신의 힘을 뽐내는 형식으로 쓰여졌다.

참고 문헌 없이 오로지 저자의 기억에의존해 집필됐다는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ㆍ로마 시대의 철학ㆍ문학 문헌들과 성경이 종횡무진으로 인용돼 저자의 박람강기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에라스무스는그 시대의 진지한 사람들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포복절도할 유머와 수다로 지식인들의 무용한 논쟁이나 성직자의 위선, 교회의 부패를 신랄히 풍자했다. 종교 개혁의 불꽃이일기 시작하던 시절을 살았던 에라스무스는 가톨릭 교회를 비판하면서도 루터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는 신학 논쟁의 불을 지피는 열정이 지나쳐서 그것이종교 전쟁으로 확산될 때 세상이 어떤 꼴이 될지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가톨릭 광신자들과 프로테스탄트 광신자들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그는 생각이 너무 많았던 회색인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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