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여름은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하루종일 몸이 개운치 않고 산해진미를 봐도 입맛이 당기질 않는다.“보약이나한 제 지어먹으면 좀 나아지려나…” 싶지만, 여름철에는 보약도 선뜻 내키질 않는다. 아무리 좋은 보약을 먹어도 전부 땀으로 나가 별 효과를 볼수 없다는 속설 때문이다. 정말 여름철 보약은 효과가 없을까?
그러나 한의학에서는 여름이다른 어느 계절보다 보약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기(氣)와 진액이모두 땀으로 우리 몸에서 빠져나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약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만으로도 충분히 여름을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의학인 사상체질을통한 여름나기를 알아본다. 사람의 체질을 4가지로 구분한 사상(四象)의학은 이제마가 1894년 발표한 한의학서 ‘동의수세보원’에서 처음 체계화했다.
폐(肺ㆍ허파) 비(脾ㆍ위장, 췌장) 간(肝) 신(腎ㆍ신장)의 크기와 기능에 따라 체질을 태양인(太陽人), 태음인(太陰人),소양인(少陽人), 소음인(少陰人) 등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렇게 분류된 체질을 바탕으로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 체형, 특정 병에 대한 저항력 등을알 수 있고, 잘 걸리는 병과 그렇지 않는 병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태양인-肝보호 다래·솔잎·붕어 좋아
폐대간소(肺大肝小)형으로 폐 기능이 좋은 반면 간 기능은 약하다. 소변량이 많으나 배설만 잘 되면별 이상이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더위를 견디지 못하고 쉽게 지치는 것이 특징이다. ‘몸이 노곤하고 움직이기 싫다’는 증상을 자주 호소한다. 음식물을먹어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송일병 경희대 한방병원 사상체질과 교수는 성격이 불 같은 태양인에게는 “오가피, 다래, 솔잎, 붕어등이 좋다”고 권한다. 또 포도, 다래 등도 좋다.
간 기능이 약하므로 음식은 담백하고 지방질이 적어야 한다. 메밀 같은 찬 곡류와 새우, 조개, 굴등의 해물, 나물, 포도, 감 등의 과일이 여기에 속한다. 반면 열을 내는 음식이나 지방질이 많은 음식, 칼로리가 높은 음식 등은 피해야 한다.
소양인-열 내리는 양격산화탕 적격
비대신소(脾大腎小)형이라 위장은 좋지만 신장이 약한 체질이다. 같은 병원 사상의학과 이수경 교수는 “몸에 뜨거운 기운이 많으므로 열을내리는 음식을 권한다”고 말했다.
평소엔 대변을 순조롭게 보지만, 몸에 문제가 생기면 변비가 자주 생긴다. 대변을 2~3일만 보지 못해도 가슴이답답하고 고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원기를 돋우기 위해 활석과 택사를 재료로 쓰는 익원산과 속의 열을 풀어주는 양격산화탕이 주로 처방된다.
보리, 팥, 녹두, 메밀 등 곡류와 돼지고기, 계란, 오리고기 등의 육류, 굴 ,해삼, 멍게 등의해산물, 배추, 오이, 가지, 호박 등의 채소, 수박, 참외, 포도 등의 과일, 생맥주, 빙과류 등 찬 음식이 적합하다.
고추, 생강, 마늘,후추, 겨자, 카레 등 맵거나 자극성이 강한 조미료은 맞지 않다. 사철탕, 삼계탕 등은 적합하지 않다.
태음인-자극성·고지방 음식 삼가야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태음인은 간 기능은 좋은 반면 폐, 대장, 피부의 기능이 약한 간대폐소(肝大肺小)형이다.
체구가 크고 위장의 기능이 좋은 편이지만 땀이 많고 호흡기 및 순환기 계통이 약하다. 이 교수는 폐가 약한 것을 강하게 하기 위해 보폐원탕이 처방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열치열식 여름나기를 권했다. “위장기능이 좋기 때문에 동물성 단백질, 칼로리가 높은 식품과 허약한 폐의 기능을 보호해 주는식품이 좋지만 먹는 양에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쇠고기, 우유, 버터, 치즈 등의 유제품과 대구, 미역, 다시마, 김 등의 해물, 배,밤, 호도 등의 과일, 무, 버섯, 더덕, 고구마 등의 뿌리채소가 맞는다. 비만이나 고혈압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므로 자극성 있는 식품이나 고지방음식은 삼가야 한다.
소음인-비위약해 차고 날음식 피해야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소음인은 신장 기능은 좋으나, 비위의 기능은 약한 신대비소(腎大脾小)형이다.
음식을 봐도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고 설사도 자주 한다. 소음인 중에는 평생 위장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
고병희 사상체질과 교수는 이들을 위한 여름철 음식으로 삼계탕, 개고기 등의 육류와 미꾸라지 등을 추천했다.
위와 소화기 계통을 강하게 하기 위해 보중익기탕이 주로 처방된다. 사과, 귤, 복숭아, 토마토 등의 과일, 시금치, 양배추, 미나리, 감자, 당근등 채소도 좋다. 마늘, 후추 같은 매운 향신료도 몸에 이롭다. 반면 소화하기 힘든 지방질 음식이나 찬 음식, 날 음식 등은 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사상의학만으로 정확하게 체질을 진단하긴 어렵기 때문에 약과 음식을 지나치게 가려먹는 것은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한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정승기 내과 교수는 “스스로 체질을 정확히 진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므로 전문한의사의 진단을 받는 게 좋다”며 “설령 체질을 정확히 진단했다 하더라도 몸에 좋다는 음식만 지나치게 편식하는 것은 올바른 식습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 "아이들 보약 반드시 진찰부터"
요즘 초등학교 교실에서는 점심식사후 가방에서 한약봉지를 꺼내는 아이들의 모습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한방병원도 늘고 있다.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생활리듬이 깨지고 학습능력도 저하되기 때문에 철철이 보약을 다려대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아이들에게 보약을 먹이기 전에는먼저 허약의 원인부터 찾아야 한다. 특정질환이 있을 때는 보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치료시기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보약을 지을 때는 간, 심, 비, 폐, 신 등 오장 가운데 어떤 장기가 특히 허약한가에 따라 처방이 달라진다.
간(肝)계 허약아(간기능 및 대사기계, 운동기계 허약아)= 어지러움을 호소하고 코피가자주 나며 근육과 인대가 약해 쉽게 삐거나 쥐가 나고 손발톱의 발육상태도 좋지 않다. 식은 땀을 많이 흘리고 눈의 기능도 약한 편이다. 이런 경우에는소시호탕(小柴胡湯)이 좋다.
심(心)계 허약아(순환기 및 정신 신경계 허약아)= 안색이 창백하고 때로는 맥박이 고르지 않거나 심한 두근거림이 나타나기도 한다.
잘 먹지 않아 몸무게가늘지 않고 감기에도 잘 걸린다. 신경질이 많고 소변을 자주 본다. 영유아기에는 밤에 갑자기 깨어 울고 경기도 자주 한다. 이런 경우에는 온담탕(溫膽湯)이좋다.
비(脾)계 허약아(소화기계 허약아)= 허약아 가운데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며 식욕부진과 편식이 주요 증상이다.
속이 메슥거린다거나 구역질, 구토를 하기도 하고 복통(특히배꼽 주위)을 호소하며 자주 체하고 입 냄새도 심하다. 이런 증상은 양위탕(養胃湯)으로 개선한다.
폐(肺)계 허약아(호흡기계 허약아)= 비계 허약아 다음으로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감기에 자주 걸리고 발열, 기침을 자주한다.
심하면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리며 숨쉴 때 휘파람 같은 소리도 낸다. 알레르기성비염으로 고생하며, 기후변화에 민감해 찬 음식만 먹어도 기침을 한다. 건폐탕(健肺湯)으로 다스린다.
신(腎)계 허약아(비뇨생식기 및 골격계 허약아)= 소변이 잦으며 시원하지 않고 밤에 오줌을 싼다. 생식기의 발육이 부진한 경우도 있다.
신경이 예민하고자고 일어나면 눈 주위가 자주 붓고 얼굴이 창백하다. 골격이 약하고 손발이 차며 특히 밤에 무릎이나 팔이 아프다고 한다. 치아와 머리털의 발육상태가 불량하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이 좋다.
■한약에 관한 오해들
한약은 학문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역사가 짧은 탓에 한약에 관련된 잘못된 속설도 많다.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내과 이장훈 교수의 도움으로 잘못 알고 있는 한방 속설 7가지를 짚어 본다.
▦여름철에 보약을 먹으면 땀으로 나가 약효가 없다?
인체의 기능이 많이 떨어지는 여름철에 특히 노약자나 환자들은 보약을 먹는 것이 좋다. 신진대사가 활발해져 불순물이 빠져 나가는 것일 뿐 보약효과가 땀으로 나가진 않는다.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찐다?
보약을 먹으면 수분대사 장애를 개선시켜 오히려 건강하게 체중을 조절할 수 있다.▦체질을 약으로 바꿀 수 있다?
체질은 약으로 바꿀 수 없다. 일부 한의학자들이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성격과 섭생을 종합적으로 바꿀 때 체질이 바뀐다는 의미다.▦한약에는 인삼이나 녹용이 꼭 들어가야 한다?
증상이나 체질을 가려서 보약을 운용한다. 인삼은 원기회복과 피로에 좋고 녹용은 보혈과 골다공증에 쓰인다.
▦한약 특히 숙지황을 먹을 때 무를 먹으면 머리가 희어진다?
숙지황은 나복자와 상극이어서 약효가 줄어들 수 있지만 흰머리는 나지 않는다.
▦어릴 때 녹용을 먹으면 머리가 좋아진다?
일부에서 약을 팔기 위해 하는 말이다. 녹용은 조혈작용을 도와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지만 지능과는 관계가 없다. 잘 크는 아이는 먹을 필요가 없다.
▦결명자를 먹으면 눈이 맑아진다?
결명자는 찬 약이라 몸이 찬 사람에게는 듣지 않는다. 또 충혈된 눈이나 피곤한 눈에는 도움이 되지만 노환으로 눈이 나빠진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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