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의욕이 없고, 기운이 없고, 밥맛도 없고, 세상 사는 재미가 없습니다. 한 열흘 됐습니다.” “동창 모임도, 아이들 성적표도 관심이 없습니다.TV에서 코미디 프로를 봐도 그게 그거예요.” “졸린 것 같기는 한데 잠은 안 와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아이 키우는 재미, 남편 봉급으로 저축 늘리는 재미로 살던 40대 주부의 호소이다.
^틀림없는 우울증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세한 병력청취와 행동을 살펴 본 결과 우울증과는 정반대의 소견을 보여주었다. 선뜻 약을 쓰면 안될 것 같아 몇 가지 주의사항을 말하고 약 없이 며칠 더 기다려 보자며 돌려보냈다.
^그런데 웬 일인지 이날 따라 예약하지 않았던 초진 환자가 다섯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똑같은 호소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이도 모두 40대였다.
세 번째 환자에게서 답이 나왔다.
“그저께 우울증에 관한 TV방송 내용과 똑같은데 왜 약을 안 주세요!”라는 항의였다. 며칠 전 우울증 환자, 정신과 전문의, 사회저명인사가 나와서 우울증에 대해 토론하는 방송이 있었던 것이다.
그날 진료했던 여자 환자 6명 중 방송내용과 같은 천편일률적 증상을 호소하던 5명은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래도 우울증에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미리 예약이 돼 있었던 한명 뿐으로 오히려 그녀가 호소하는 증상은 먼저의 다섯 명과는 다른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친구가 간암으로 세상을 뜨면 옆구리에 이상한 느낌을 갖고, 자기 간은 괜찮은가 병원에 가 검사를 하게 된다. “당신 요즘 어디 아파? 안색이 왜 그래?”라는 소리를 하루 세 번만 듣게 된다면, 몸 어느 한 구석에 이상한 감각을 느낄 것이다.
의사가 진찰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상한 표정을 짓고 난 다음, “다시 진찰하게 한번 더 누워 보세요!”하면 불안해지게 마련이고 큰 병에 걸린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병에 관한 한 인간은 비과학적으로 피암시성이 높다. 그래서 어설픈 의학정보는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 수가 있다.
요즈음 여기저기 널려 있는 의학정보를 잘못 이해해서 자기가 큰 병이 걸렸다고 생각해 병원을 찾는 멀쩡한 사람이 꽤 있다. “의원성(醫原性) 질환”이란 말에 비유해서 ‘정보원성(情報原性)질환’이라고 할 만하다.
김이영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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