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벌어진 제14회 후지쯔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준결승전에서 조훈현 9단과 최명훈 8단이 승리, 나란히 결승전에 진출함으로써 한국의 4년 연속 우승이 확정됐다.한데 이번 후지쯔배 준결승전 소식을 들으며 약간 의아하게 생각한 것이 집 차이가 너무 났다는 것.
최 8단과 대만의 저우쥔신(周俊勳) 9단의 대국에서는 흑7집반승이었고 조 9단과 린하이평(林海峰) 9단전에서는 무려 16집반 차이였다.
사실 정상급 기사들의 대국에서 이 정도 차이면 중간에 돌을 거두는 것이 관례. 기력이 낮은 일반 동호인들의 경우에는 형세 판단 능력이 부족하므로 수십 집 져있는 바둑인데도 끝까지 대국을 마치고 잡은 돌을 대충 메워 놓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패배를 선언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대국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돌을 거두려면 바둑을 다 두기 전에 해야지, 대국을 끝까지 했다면 차이가 얼마가 나건 반드시 계가를 해서 승패를 확인하는것이 예의이다.
흔히 '돌을 던진다'고 말하는 데 이는 일본 용어 도료우(投了)에서 따온 것으로 어감이 더소 거친 듯해서 요즘에는 '돌을 거둔다'는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프로기사 들의 대국은 집 차이가 10집 이상이면 대개 불계로 끝난다. 바둑 두는 재미보다는 어차피 승패가 중요한 프로기사들에게는 1집을지나 만방을 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형세가 불리하다 싶으면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 보고 안 되면 돌을 거두기 때문이다.
기사에 따라서는 아주 미세한 차이인데도 중간에 돌을 거두기도 한다. 아무리 계산해 봐도 자기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형세이므로 치사하게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지 않고 깨끗이돌을 던지겠다는 것.
주로 일본 기사들 가운데 이런 경우가 많은데 반해 한국이나 중국 기사들은 여간해서 돌을 거두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보면이번 경우에도 패자들이 모두 중국계라는 점이 눈에 띤다. 두 가지 중 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중간에 자신의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도 좋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것도 팬들을 위한 중요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간혹 상대가 돌을 거두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특히 요즘들어 공식 기전의 제한시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이므로 종반 초읽기 과정에서 상대가 아차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는 것이고 보면현세가 조금 불리하다고 해서 너무 성급하게 돌을 거둘 필요는 없을 것이다.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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