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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무지한 사학도 당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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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무지한 사학도 당번병…

입력
2001.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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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한 나는 학생 신분이라 1년 반 밖에 복무하지 않았다.그 생활을 돌이켜 보면 추억과 악몽이 교차지만 그 시절 한 상사로부터 들었던 ‘멸시적인’ 한 마디는 ‘내 평생 잊지 못할 일’ 중의 하나가 되었다.

신병교육을 마친 나는 9861부대 공병부에 배치되었고 대대장실 당번 병으로 차출되었다. 당시 대대장실에는 통역장교 였던 선(宣) 중위라는 분이 있었다.

그는 사전과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분으로당시 문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늘 사색하는 듯한 얼굴에 냉소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는 사단의 정훈교육을 위해 교관으로 가끔 파견되었다.

한번은 교재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국사에 관한 질문을 몇 개 던졌다. 내가입대 전 사학과 학생이었다는 것을 알고 한 질문이었다.

질문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때 선 중위는 “S대학 사학과에 다닌다는 녀석이 그런것도 몰라.”하면서핀잔을 해 댔다.

그의 말에 의도적인 모욕은 없었지만 나로서는 심한 자괴심을 느꼈다. 이 때 받은 충격은 결과적으로 나의진로를 목회자에서 사학자로 바꾸게 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나는 신학 공부에 앞서 수학해야 할 과목으로 역사학을 선택했다. 사학과에 입학해서도 국사보다는 서양사를, 사학 과목보다는 종교학 과목을 넘나들면서 2년간을 보냈다.그런 과정을 거쳐 입대했으니 국사의기본 지식조차 터득했을 리가 없다.

선중위가 던진 한 마디는 다음과 같이 생각을 고쳐놓기 시작했다. “한국의 목회자는 기독교의 복음과 전통 못지않게 한국의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독교가 씨라면 한국은 그 씨를 받아 키우는 밭이다. 때문에 토양에 대한 이해를 무시한 지금까지의 태도는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

제대후 나는 서당훈장 경력을 가진 시골 어른을 찾아 논어와 맹자를 공부했다. 한국의 사상적 풍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고전을 먼저 익혀야만 했다.

복학해서는 서양사 못지않게 국사 공부에 중점을 두었고, 졸업논문은 국사로 정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은 이렇게 나의 진로에 대한 궤도수정을 서서히 시키고 있었다.

이만열(숙명여대 교수,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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