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9일 역사교과서에 대한 우리측 수정요구안 35개 항목에 가운데 2곳만 수정하겠다는 공식 방침을 우리 정부에 전달하자 학계는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라며 일본측을 비난하고 나섰다.그러면서도 일부 국사학자들은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그 동안 정부가 대일 관계에서 너무 경제협력에만 치중하다가 ‘정신적’ 측면을 잃고 만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는가 하면 “이제 우리는 우리 역사를 소홀히 하고 왜곡한 것이 없는지 냉철히 돌아봐야 할 때”라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국사편찬위원회 이성무(李成茂) 위원장은 “일본측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견해차다’ ‘교과서 집필진에게 고치도록 강요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고 돌려대는 것은 ‘논리’가 아니며 기본적으로 수정을 안 하겠다는 의사표시”라며 “일본 교과서 문제는 이제 학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닌 만큼 적절한 대응책을 종합적으로 구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일본이 역사 문제를 왜곡된 방향으로 그토록 우기는 것은 어찌 보면 그만큼 준비가 많은 것”이라며 “반면 우리는 세계화 운운하며 고교 국사를 대폭 축소하고 대학 교양과목과 각종 시험에서도 국사를 줄이는 등으로 치달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일본에 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李泰鎭) 교수는 “일본이직접 피해자인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 대해 이견을 말하는 데 대해 내정간섭 운운하며 완전 무시하는 것은 부당하며 일본을 진정한 우방이라고 볼 수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며 “특히 그 동안 일본과의 관계를 너무 경제협력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정신ㆍ교육적 측면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태가 온것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번에 우리의 대(對)일본관이 얼마나 허술했는지가 드러난 만큼 전반적인 대 일본 정책을 재고해야 할 시점에 왔다”며“특히 이번 일본의 잘못된 경우를 통해 역사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철저히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신여대 사학과 이현희(李炫熙) 교수는 “일본이 여전히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과거의 패권주의적 황국사관이 아직도 그대로 있는 것이라고 본다”며 “결국 그 동안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까지 겹쳐 ‘한국멸시론’으로 표출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일본이오기와 자만심으로 우경화로 가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고교 역사교육을 약화해 고대사와 현대사는 안 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가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사교육을 적극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성공회대 일본학과 권혁태(權赫泰) 교수는 “앞으로 일본의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편찬한 문제의 후소샤(扶桑社) 교과서의 실제 중학교 채택률이 10%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고교 역사교과서 검정 문제도 남아 있기 때문에 정부, 국사편찬위원회, 민간 등의 차원에서 이에 미리부터 대처해야한다”며 “장기적 차원에서는 중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 및 일본 내 양심세력과 협력해 ‘일본 포위망’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29일 참의원 선거에서도 고이즈미의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겠지만 그 이후의 경제 및 내부개혁에 대해서 일본내 여론이 어떤 방향으로갈 지는 알 수 없다”며 “일본 정권이 아직 안정기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 문제 등 여론의 흐름을 예의주시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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