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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유리병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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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유리병 편지

입력
2001.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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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있는 일에 대해종종 의문을 가지게된다. 흙을 일구는 대신 나는 어쩌다글을 읽고,쓰고, 글읽기를 가르치는 것이 본업이되었을까.어줍잖게 이 글 저 글 배우느라 예나 지금이나 막막하고 고단하기도 하지만 늘 송구스럽다. 세상에 무얼 읽고 써도 그것이 내가 먹는 곡식 값이 될 것 같질 않았다. 역사의 암울한 고비들에서는 문학이 무엇일 수 있을까 하는 더 많은 회의를 가지곤 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글을 읽어오면서, 나는 문학이란 무엇보다 사람의마음을 남기고,전하고, 읽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글에는 많은 것이 담긴다. 때로는 한 편의 글에 인생전체가 담기기도 한다.

폭력적 이었던 우리의 80년대에는 ‘아우슈비츠’를경험한 유대인 문인들의 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었다.

소련과 루마니아 접경지대에서 태어나 현대사의 변천을 혹독하게 겪은 파울첼란의 시를 열심히 읽었다.

그는 독일어가 모국어라 시는 독일어로 썼지만 독일에서는 수용소의 참혹한 경험만했을 뿐이다.

한 번 독일에 살아본 적도 없고,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결국 우울증으로 세느강에 투신하고 만 사람이다.

그런 그가 고도의 문학성에 수렴해 놓은 고통의 경험은 독일 현대시의 정점이자 인류사의 깊은 수렁을 보여준다.

첼란은 자신의 문학을 ‘유리병 편지’라고한다.그언젠가 그 어딘가에 닿으리라는 희망에서 유리병에 담아 망망대해에 띄우는 편지 말이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바로 바닷가에서 그런 유리병편지 하나를 집어드는 일이었다.

정말로 유리병에 담겨 파묻혀 전해진 글을 만나기도 했다. 폴란드바르샤바의 게토에서 봉기를 일으켰던 유대인들이 전멸에 직면하자 마지막 힘을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할 시인 한 사람을 피신시킨다.

이런 사명을 가지고 잠시더 살아남은 시인 이작 카체넬존은 그 일을 담은 시들을 깨알같이 베껴 여섯 부를 만들어 놓은 후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직송되었다.

그중 유리병에 넣어 파묻었던한 부와 가방손잡이에 꿰매 넣었던 한 부가 구해져서 몇 년 전에 출판되었다.

그 글을 저도 모르게 옮기면서 왜 글을 배워 이런 인간의 야만을 알아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었다.

그렇지만 이렇듯 정제된 언어로 남겨져 내 손에까지 와 닿은 글에서 결국인간의 존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글을 한 번이라도 읽은 사람은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인간이기를 그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뛰어넘어 바로사람의 가슴에 와닿는 문학의 힘도 되새겨보게 된다.

그런데 희귀한 ‘유리병편지’를 받아드는 기쁨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얼마 전 한 학회에서 만난초면의 루마니아 부카레스트대학 교수는 오로지 파울 첼란을 읽었다는 이유로 떠나는 기차 차창까지 다가와, 강연회도 마련하고 어디든안내할 테니 꼭 한번 오라고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픔이 담긴 글귀를 같이 읽었다는 그 사실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가깝게다가서게 하다니 그만큼 세상사는 일은 어디서나 힘들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체넬존이며 첼란 뿐이겠는가. 망망대해에서 유리병 편지를 찾아 헤매는 가운데,시간과공간을 넘어서 전해지는 글 쓴 이의 마음들을 만났다.

그들을 생각하노라면, 그만 염치없게도,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한다.

지금도 내가 읽고 쓸 수 있는 것이 내가 먹는 곡식 값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함 없다. 그러나 ‘유리병편지’를 받아들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그것을 다시 몇몇 손에 전해주는 일도 세상의 한 구석을 일구는 일이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영애 /서울대독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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