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요 역사상 처음으로 제작자들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KBS의 예능국 간부는 연예제작자협회와 MBC의 갈등을두고 이렇게 말했다. 싸이더스, G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화한 매니지먼트업계의 힘이 커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는 것이다.
매니저와 가수의관계를 노예계약으로 묘사한 ‘시사매거진 2580’이빌미가 됐지만, 그간 다른 분야의 연예인과도 형평이 맞지 않던 가수에 대한 방송사의 대우를 개선하기에 호기가 된셈이다.
예능프로그램 PD들은 “오락프로그램 출연은양쪽의 이해관계를 맞춘 것인데 새삼 문제가 되느냐””고 말한다. 방송사는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시청률을붙잡아 줄 수 있는 스타급 가수를 원하고, 가수는 얼굴을 알릴 수 있는 출연기회를 잡으려 한다.
가요순위프로그램 등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은 ‘뮤직뱅크’ ‘뮤직플러스’ ‘이소라의 프로포즈’ ‘열린음악회’(KBS) ‘음악캠프’(MBC) ‘SBS 인기가요’ ‘메모리스’(SBS) 등 채널 당 1, 2개다.
캐스팅 권한을쥐고있는 것은 방송사이다. 선택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가수 및 제작자로서는 시청률의 볼모가 됨을 뻔히 알면서도 방송사의 부름에 응하는 게 최선인 셈이다.
공중파 방송의 순위 프로그램에 가수들이 ‘목을매는’ 이유는 전근대적인 유통에 그 원인이 있다. 음반 판매량 전산화 등이 이뤄지지 않아 권위 있는 음반 판매량 집계가 없는 상황에서 방송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인기를 가늠하는, 유일한 척도나 다름없다.
음반 시장을 시장 논리에만 맡겨둔 정부의 책임도크다.
예능PD들도 불만이 있다.
“수 십 개의 오락프로그램이내남없이 인기 가수를 원하지만, 가수들에게 힘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소수”라는것. KBS에서만 보면 ‘뮤직뱅크’ ‘뮤직플러스’ ‘열린 음악회’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이소라의 프로포즈’ 정도가 PD의 뜻대로출연자 선택이 가능하고, 나머지의 경우 방송사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인기가수의 관계는 역전될 수 밖에 없다.
연예제작자들은 가요순위프로그램의 순위선정이 실제 인기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도,가수들의 방송출연료가 다른 분야의 연예인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방송 기여도나 현장투표. ARS(자동응답전화) 등의 방식은 폭 넓은 세대의 선호도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본다.
‘음악캠프’의 책임프로듀서 장태연 부장은 “음악캠프의 순위가 절대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평가는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말한다.
가수의 출연료가 비현실적이라는 점은 예능PD들도 공감한다. KBS는 5등급(특급-가-나-다-라)으로나누는데, 원로급인 특급은 출연료가 60만 원 이상이고 신인가수는 10만 원 남짓이다.
방송사측은 “드라마가 주 수입원인 연기자들은 협상을 통해 출연료를 현실화한 반면, 가수들은 지금까지 출연료문제를 등한시해 온 편”이라며“가수협회와 협상을 통해서 조정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방송사의 독단으로 출연료를 결정하지 않았다는설명이다.
인기 연예인만을 선호하는 방송의 행태를 꼬집는 목소리에 대해서도 할말은 있다.KBS 예능국 김영선 부장은 “‘테마토크, 여자를 위하여’나‘지금은 휴가중’ 등 연예인 의존도가 낮은 코너를 갖고 있던 ‘두남자 쇼’(SBS)가 경쟁관계인 ‘서세원 쇼’처럼 연예인 토크쇼로 포맷을 바꾼 까닭이 무엇이겠냐”고 반문한다.
김 부장은 “시청률이 방송의 상품가치를 재는 척도인 현실에서 시청률을 보장해 주는 인기 연예인, 특히 인기 가수에 연연할 수밖에 없는것이 쇼ㆍ오락 프로그램의 바보 같은 숙명”이라고 말한다.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릴 수없는 것 또한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논리는 하나다. “대중이 인기스타를 원하기 때문에 방송도 인기 스타를 원한다.” 때문에 대중가요의 유통구조가 변화하지 않는 한, 가수와 방송사의 왜곡된 관계는 청산되기 힘들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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