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최근 최저가 낙찰제 제도개선안을 내놓자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있다. 최저가 낙찰제는 올 1월부터 정부 발주 공사에 도입됐으나 덤핑수주 등의문제가 불거지자 정부가 다시 공사예정가격의 70% 미만으로 입찰한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다.일종의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로 “최저가 낙찰제로 덤핑 수주가 만연해 부실공사가 우려된다”는업계의 주장을 수용한 것.
이에 대해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최저가 낙찰제와 부실공사는 관련이 없다”며 “국가예산 낭비를 막기위해 최저가 낙찰제를 고수해야 한다”고 비난하고있다.
[찬성] 덤핑입찰 부실공사 우려 외국서도 저가입찰 배제…
우리나라 공공 발주공사는오랫동안 ‘제한적’ 최저가 낙찰제로 운영되어 왔다. 이 제도는 세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로 예산낭비와 건설산업의 기술경쟁력을 저하시키는후진적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민의 혈세로 건설업자의 이익을 20~30% 보장해 줌으로써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IMF 체제이후에도 유독 건설업에서만 신규창업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도 이 제도 때문이다. 신규업체를 창업하여 공공 공사를 수주만 하면 최소 20%, 최대50% 이익이 보장되기 때문에 너도나도 창업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도입된 제도가 최저가 낙찰제이다. 이 제도가 기술경쟁을 유발시켜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국가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제도로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건설교통부 등 경제관련 부처가 모여 1998년 발표한 ‘공공사업 효율화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으며, 건교부는 이 방안을발표하며 2002년까지 건설예산을 연간 10조원씩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건교부를 필두로 최저가 낙찰제를 사실상 포기하겠다는 발표가 이어지고있다.
최저가 낙찰제로 인해 부실공사, 업체부실 및 건설산업 전반의 부실로 이어져 그 피해가 결국 일반 국민에게 돌아간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는 건설업체의 이익을 보장해 주려는 행위에 불과하다. 일반건설업체(원도급자)는공사비의 60∼70%를 하도급(하청)주거나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하도급을 받은 전문건설업체는 최저가 낙찰방식으로 치열한 가격경쟁을통해 선정된다.
현재의 ‘제한적 최저가낙찰제’는 낙찰만 받으면 30~40%의 이익이 보장되는 신기하고도 기막힌, 시장경제의 기본원칙에 역행하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희한한 제도이다.
건설공사는 주문생산 이라는 특성을 감안할지라도 20만명의 기술공무원(공기업 직원 포함)과 10만명의 감리요원에게 연간 수 조원의 예산을투입하여 부실을 감리, 감시, 검사, 검측, 점검토록 하고 있다. 공무원이 제 역할만 한다면 부실공사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제한적 최저가낙찰제는 기술보유자에게는 매우 불리한 제도로서 자신의 기술을 이용하여 저렴한 값에 남들보다 좋은 질의 제품을 빠르게 생산할 수 있는 사람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또 현재의 가격경쟁 없는 복권추첨식의 ‘운찰제’로는 기술개발 투자나 연구개발이 필요하지 않다.
정해진 금액 내에서 정해진 방법으로만 시공해도 이익이 보장되는데, 굳이 새로운 공법을 개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 결과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세계적인 특허기술을 1건도 가지고 있지않다. 5만개의 건설업체와 50만 건설기술인과 300만 건설인이 세계특허나 내로라 하는 기술을 갖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는최저가 낙찰제를 수십, 수백년간 시행하고 있다. 건교부와 재경부의 최저가 낙찰제 훼손은 연간 5조원의 예산낭비는 물론 우리나라 건설산업의 경쟁력을 낙후시킬 뿐이다.]
김헌동(경실련국책사업감시단장)
[반대] 부실방지 핑계로 완화는 건설업자의 이익만 보장…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하여시행한 지 6개월이 지났다. 지난 6개월동안 관련 제도는 몇 차례나 바뀌었다.
잦은 제도변경을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최저가 낙찰제의 취지를훼손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의 정착에 필요한 건설제도나 관행이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그저 팔짱만 끼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최저가 낙찰제가 효율성을강조하는 시장경제 원리에 부합되고, 국제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낙찰 제도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4차례(약35년간)나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착시키는데 실패한 낙찰제도였다.
가장 큰 원인은 ‘덤핑’이라고 부르는 지나친 저가입찰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생리상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 공사의 품질이 좋을 리 없다.
저가수주에 따른 손실을 축소 내지 전가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저가 수주한 기업만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발주자와 국민 모두에게 큰 손실을 초래할 수도있다. 그렇기 때문에 최저가 낙찰제 정착을 위한 제도개선의 초점을 덤핑방지에 두는 것이다.
상반되는 시각도 물론있다. 최저가 낙찰제에서는 문자 그대로 최저가격 입찰자를 낙찰자로 선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돈 1원에 입찰했더라도 입찰자의 자발적인 의사에 입각한 것이라면, 당연히 낙찰자로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미국·영국·일본 등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는 어떤 나라에서도 ‘1원 낙찰’과 같은극단적인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최저가 낙찰제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마다 발주자가 입찰가격의 적정성을 검토하여 터무니없는 저가 입찰자를 낙찰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이 국제표준(Global Standard)이다.
예컨대 미국과 일본에서는 최저 입찰가격이 정부예정 가격의 80% 미만일때 저가심의를 하거나 낙찰대상에서 아예 배제 시키기도 한다.
미국 보증기관에서도 명백한 저가 입찰자에게는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는다. 건설공사 같이먼저 수주하고 나중에 생산하는 상품의 경우, 충분한 계약이행 능력을 가진 업체에게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시설물을 공급 받을 수없다는 철학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지난 6개월동안 정부에서 추진한 일련의 최저가 낙찰제 보완대책도, 이같은 철학을 우리 현실에 접목시키고자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덤핑입찰과 같은 일종의‘부당염매행위’는 공정거래법에서 불공정행위로 금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의 도입취지도 무한경쟁을 촉발시켜 덤핑수주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다.
건설업체의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여 공사비를 절감하고, 경쟁력 있는 업체의 수주기회를 확대시켜 줌으로써 건설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자는 데 참뜻이있다.
이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입찰제도나 보증제도 뿐만 아니라 감리·감독제도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공공발주제도와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부실화냐 예산절감이냐 수차례 폐지·도입 반복
■최저가 낙찰제는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 중 1,000억원 이상의 대형공사에 최저가 낙찰제가 다시도입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저가 낙찰제는 자유시장경제의 원리에 입각해 가장 낮은 가격으로 입찰한 업체 가공사를 맡게 되는 것이지만, 덤핑 경쟁으로 인해 건설업계의 동반부실 뿐 아니라 부실 시공을 가져온다는 우려가 제기돼 그동안 수차례 폐지와 도입이반복됐다.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올 1월 다시 최저가 낙찰제가 도입됐지만 덤핑 우려역시 어김없이 뒤따랐다.
올해 4월 최저가 낙찰제가 첫 적용된 송도 신도시 기반시설공사 입찰에서 낙찰가가 공사 예정가의 58~59%에 불과하자 업계는 덤핑 우려가 현실화했다며 제도보완을 요구하고 나섰다.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입찰자격을 강화하거나 73%미만일 경우에는 공사이행 보증서 발급을 거부하는 등의 저가 입찰을 막는 방안을 추진해오다 지난 2일 새로운 개선안을 내놓았다.
공사예정 가격의 70%미만의 가격으로 낙찰 받은 기업은 향후 1년간 신인도 부문에서 감점을 받고 정부가 지급하는 공사착수금도 계약금액의 20%에서 10%로 줄인다는 것.
또 낙찰가가 적을수록 보증요율을 높게 적용토록 했다. 사실상 70%미만으로 입찰하기가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경실련은 “저렴한 예산으로 정부공사를 수행하는 업체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최저가 낙찰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것으로 건설예산 연간 10조원 절감약속을 어겼다”며 예산 낭비와 직권남용 명목으로 건설교통부 장관을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경실련은 “공사예정가자체가 애초에 부풀려져 있다”며 “자유시장 경제에 따른 최저가 낙찰제는 건설업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최저가 낙찰제를 둘러싼 이 해묵은 논쟁은 크고 작은 건설업체들의 이해관계와 업계의 잘못된 수주 관행 등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명쾌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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